쥬리와 제이피
아침이 되어 제이피를 본 아이들은 처음에 조금 경계했다.
사랑을 독차지하던 쥬리가 어쩌면 찬밥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새끼라 잘 걷지도 못해 마루 장판 위를 찍찍 미끄러지며 가까이 오는 제이피를 어린 둘째 딸은 손으로 밀어내기도 했다.
갑자기 우리 집에는 개 두 마리가 되었고,
제이피는 겨우 젖을 뗀 어린 녀석이었지만 금방 덩치가 커졌다.
정신적으로는 어렸지만 코카가 중형견이라 먹는 양이나 자라는 속도가 쥬리 보다 빨랐다.
또 제이피가 먹성이 좋아 늘 쥬리의 음식까지 빼앗아 먹어 할 수 없이 생선이나 고기를 줄 땐 제이피를 따돌리고 방에 데리고 들어가 몰래 먹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쥬리를 더 사랑했던 것 같다.
코카가 워낙 활달한 성격인 데다가 어릴 때라 두 녀석은 천방지축으로 날뛰었다.
어느 날은 집에 들어와 보니 참기름을 쏟아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두 녀석이 온통 기름범벅이 되어 있던 적도 있다.
제이피는 오줌을 잘 가리지 못해 번번이 카펫에 오줌을 쌌다. 남편에게 야단맞을까 봐 걸레에 물을 적셔 깨끗이 닦아내고 드라이기로 말려 흔적을 없애는 게 매일 숙제였다.
산책을 나가면 쥬리는 잘 뛰어노는데 제이피는 집에 들어가고 싶어서 움직이지도 않았다. 쥬리가 멀리 가버릴 땐 빨리 잡으러 가야 하는데 제이피가 버티고 있으니 그 큰 녀석을 억지로 끌거나 안고 뛰어야 했다.
한 녀석이 잘하면 평소에 안 그러던 녀석이 번갈아 말썽을 부리니 도저히 이렇게 두 녀석을 함께 데리고 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둘 중 하나를 보내기로 했는데 딸들은 쥬리를, 남편은 제이피를 원했다.
때마침 지인의 소개로 쥬리를 입양하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났고 믿을만하여 그 집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특히 그곳은 마당이 넓은 주택이라 산책을 좋아했던 쥬리에게 꼭 맞을 것 같았다.
새로운 주인에게 안긴 쥬리는 아마도 겁이 나서였겠지만 별다른 반항은 하지 않은 채 그저 으르렁 소리만 냈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하루 종일 방문을 잠그고 울었다.
사실 제이피를 데리고 가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후보가 둘이었는데 한 명은 시어머니 친구분으로 연세도 있으신 데다 아파트라 좀 내키지 않았다.
다른 한 명은 딸 친구 학부형이었다. 주택에 마당도 있고 집 뒤로는 우리가 자주 가던 큰 공원이 있어 보내려 했다. 그런데 제이피를 보러 우리 집에 왔을 때 마치 '이 개가 비싼 개인가' 하는 듯 자꾸 개를 살피는 눈빛이 너무 싫어 마음이 돌아서버렸다.
쥬리를 보냈다고 해서 완전히 잊고 산 것은 아니었다.
자꾸 마당 흙을 파고 놀아 주인 할머니에게 야단을 맞는단 소식도 전해 듣고, 제이피 나이가 10살이 다 되었을 무렵에도 "쥬리는 나이가 더 많았으니 벌써 죽었겠지?" 하며 떠올렸다.
혼자가 아닌 둘이었다면 제이피도 훨씬 덜 외로웠을 것이라는 생각에 후회도 많이 했다.
+ 쥬리의 사진을 꼭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