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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Oct 29. 2020

눈에 밟히다

제이피 이야기

어느 날 남편이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회사 근처에서 분양하는 것을 보고 자꾸 눈에 밟혀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작은 상자를 열자 겨우 젖을 뗀 누런색 강아지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그 녀석이 바로 내 인생의 첫 번째 개 ‘제이피’이다.

물론 내가 자라면서 수많은 개가 스쳐 지나갔지만 어른이 되어 내 아이로 받아들이고 기른 첫 번째 아이다.

(왜 쥬리가 아닌 제이피인지는 뒤에 가서 알게 된다.)


개 이름은 남편이 회사 앞에서 데리고 왔다고 하여 회사 이니셜을 따서 JP라고 지었는데 그게 많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당시 정치인이던 김대중 DJ 김영삼 YS 김종필 JP로 부르던 때라 사람들은 개 이름을 들을 때마다 웃으며 그분의 지지자인 것인지 물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더 많은 시간이 지나자 딸의 친구들은 JP가 래퍼 김진표인지 묻기도 했는데 그 질문을 받을 때면 과연 세대교체가 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피가 처음 우리집에 온 날 (생후 한달 된 모습)


제이피는 잉글리시 코카스패니얼 암놈으로 1993년 큰 딸이 초등학교 6학년, 작은 딸이 3학년일 때 우리 가족이 되었다.

요즘은 강아지 종류가 다양하지만 그 당시에 코카 스페니얼 종은 드물었다. 사람들은 ‘구두 광고(허시**)에 나오는 그 개’냐고 물었다.


남편이 갑자기 그 녀석을  데리고 온 이유를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남편을 스무 살 대학 종강파티 때 만났는데, 남편이 대학을 다니던 중 병역의 의무로 군대를 가게 되었고 우리는 잠시 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매일 만나서 같이 공부하고 데이트하다가 여자 친구를 혼자 남겨 두고 떠나려니 걱정이 되던 차에 부산 집 농장에 있는 잉글리시 코카스패니얼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 당시 농장에서 있던 여러 마리 중의 하나로, 종류도 성별도 모른 채 흙투성이의 시골 개로 살고 있었는데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개와 달리 특이하고 잘 생긴 외모가 남편의 마음을 움직인 모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선물이라며 그 개를 부산에서부터 기차에 싣고 아침 일찍 내려서 우리 집에 데리고 왔다.

나 역시 여태껏 보지 못한 모습으로 귀가 길고 털이 곱실거리는 황갈색의 우아한 귀족적 외형에 반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남편의 큰 그림(?)대로 학교 수업을 마치면 개가 보고 싶어서 집에 급하게 달려오곤 했다.

개 껌이나 사료도 없던 시절이라 시장에 가 순대를 사 와서 먹이기도 했다.


그러나 2 년 정도 지나서 그 개를 잃어버렸다.

우리 집은 마당이 넓은 한옥 집이었는데 그 시절에는 아파트가 거의 없었고 개는 대부분 집을 지키는 역할로 보통 마당에 목줄을 매어 길렀다. 우리 집은 개에게 목줄을 하지 않고 방에서 자고 마당에도 왔다 갔다 하게 하며 자유롭게 길렀다.


앞서 말했지만 그 당시 낮에는 대문을 잠그지 않았기에 집을 나가서 길을 잃어버렸거나 누군가 개를 불러내어 데리고 간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마 남들이 보기에도 그런 개는 드물었고 비싼 개처럼 보였을 테니까.

그때는 도둑이 많아 약을 탄 고기를 먹여 죽이고 집에 들어오는 일도 흔했고 개를 훔쳐가는 개 도둑도 많았다.

그래서 누군가 훔쳐 가서 팔아먹은 것은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그 일로 내가 몹시 우울해하자 남편은 꼭 찾아오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대신 빈손으로 돌아올 수 없어서 다른 개 한 마리를 사 왔는데 훗날 그 녀석이 새끼를 낳은 첫 번째 딸이 바로 내가 결혼 후 친정에 두고 온 쥬리이다.


남편에게 코카는 좋아하는 견종이자,

그런 아쉬움 가득한 추억의 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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