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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Oct 30. 2020

유모차

제이피와의 이별

제이피는 관절염이 있었지만 수술을 하지 않고 오랜 시간 약을 먹였다. 

그래서 꾸준히 운동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산에 자주 데리고 다녔다.  

여느 날처럼 산 쪽으로 산책을 가는 중에 동네 떠돌이 개 백구가 제이피를 물었다. 

그 순간 내 정신이 아니었다. 

큰 개는 한번 물면 놓지 않고  결국 우리 개를 죽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발로 힘껏 백구를 찼다. 

백구가 나를 공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눈앞에서 제이피가 물려 죽는 것을 손 놓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백구는 떨어져 나와 제이피를 놔둔 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제이피를 안고 집으로 오는데 거리도 만만치 않고 너무나 무거워서 팔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제이피가 낑낑 소리를 내며 걷지 않으려고 해서 15킬로나 되는 개를 안고 걷는데 어느 집 앞에 유모차가 눈에 띄었다. 마음 같아서는 유모차를 훔쳐 태우고 집까지 끌고 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어 겨우 겨우 집에 도착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그 날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 못한 그 날..

자궁 축농증 수술 때문에 제이피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남편은 사업으로 중국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혹시 남편이 없는 동안 제이피가 죽으면 나 혼자 어찌할까? 걱정도 되고 두려웠다. 이미 큰 딸은 유학 중이고 작은 딸도 서울에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귀국했는데 제이피 배가 유난히 불러서 혹시 살이 찐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하고 병원에 갔다.

제이피를 잃어버렸던 병원을 계속 다니고 있었는데 병원도 시설이 최신형으로 바뀌었고 의사도 친절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의사의 진찰 결과 제이피는 중성화 수술을 안 했는데 자궁 축농증이라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데 갑자기 다리를 네 발로 쭉 뻗으며 퍼져 버렸다.

걷지를 못하고 두발을 질 질 끄는데 그래도 오줌은 바닥에 싸지 않으려고 베란다까지 기어 나가서 누었다.

갑자기 뒷다리를 못 쓰고 기어 다니는 녀석을  안고 자려는데 진통이 있는지 밤새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다.

관절염이 한창 일 때와 같은 괴로움을 호소하는데 침대에 올라가지 못하고 바닥에서 밤새도록 함께 끌어안고 괴로워했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 찾아가 팔에 링거를 맞고 기다리는 동안 여러 사람이 개를 데리고 들어오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어떤 사람이 강아지를 유모차에 태우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강아지 유모차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는데 그 당시에는 개 유모차가 드물어서 신기하기만 했다. 

그 개는 어딘가 많이 불편해 보였는데 기저귀를 차고 바닥에도 방석을 깔고 물건을 주렁주렁 많이 매달고 있었다. 오는 길에 똥을 싼 모양인지 무른 똥으로 엉망이 된 것을 갈아주느라 보호자가 힘겹게 치우고 있었다. 옆에 또 한 마리의 개가 서 있었는데 한 마리도 데리고 오기 힘들 텐데 커다란 개를 두 마리나 데리고 있는 모습이 참 감동스러웠다. 그걸 보면서 만약 제이피가 더 늙고 병이 들어 제 발로 산책을 못 하는 날이 온다면 나도 저런 유모차를 꼭 사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러는 사이 작은 딸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던 친구도 걱정이 되어 딸을 보러 오는 김에 병원에 따라왔다. 딸은 전날 제이피 신음 소리를 전화를 통해 듣고 오늘 수술을 한다는 소식에 온 것이었다. 제이피는 딸이 병원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보자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엎드린 채 있는 힘껏 꼬리를 흔들었다.

 

제이피가 수술실에 들어간 사이 아이들을 놔두고 남편과 잠깐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밥을 먹고 나오려 하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심상치 않은 생각이 들어 급히 들어와 보니 제이피 수술을 하던 중 암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간암인데 이미 다른 장기에 전부 암이 퍼져서 힘들고, 더구나 수혈을 해야 하는데 피를 구할 수 없어서 다음날 서울에 연락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피가 당장 구해지는 것도 아니고 장담할 수 없다는 의사의 절망적인 소리만 맴돌았다. 자궁 축농증 수술을 하러 들어갔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일단 수술을 하려고 배를 열었으나 손을 댈 수가 없어서 덮었다고 했고, 제이피는 마취에서 조금씩 깨어나는 중이었다. 

지금은 초음파로 자세히 검사를 하고 수술을 하는데 그 시절에는 그런 장비가 부족했던 것 같고 제이피가 몸을 움직여 제대로 보이지 않아 미처 못 봤다고 했다. 그런 상태에서 마취가 깨어나는데  병원에  입원을 시켜야 하니 일단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제이피를 잃어버린 후로 우리는 여행을 가도 한 가족이 전부 다 가는 일이 없었다.

제이피 역시 어릴 적  잃어버린 트라우마로 밖에 나가면 목줄을 자기 입에 물고 다녔는데 한참 안정이 된 후에야 줄을 놓았다. 

사람들은 개가 자기 목줄을 입에 물고 다닌다고 신기하다고 했지만 그건 남들은 잘 모르는 가슴 아픈 이야기다.


자기 목줄을 물고 다니던 제이피


제이피를 혼자 떼어놓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싫었고 그렇다고 수혈에 필요한 피가 당장 내일 아침 생길 리 만무한데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혼자 지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의사는 제이피가 병원에 갈 때마다 자기 수명을 넘겼다며 나머지는 덤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나는 드디어 이제 그를 고통 없이 보내줄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안락사 주사를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마취에서 조금씩 깨어나는 상태의 개를 안고 쓰다듬고 울며 이야기했다.

의사가 주사를 준비하는 동안 그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져서 소리를 질렀다. 


"빨리빨리 주사를 주세요." 난 혹시나 제이피가 완전히 깨어날까 봐 두려웠다.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고 편히 떠날 수 있도록 기도한 순간이 왔던 것이다.


제이피의 아빠와 엄마 그리고 언니, 언니 친구까지 곁에서 마지막을 지켰다.

그날은 2007년 6월 7일 목요일이었다.


제이피와 나 "사랑해 제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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