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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Oct 31. 2020

이 글을 쓰는 이유

뒤늦은 프롤로그

제이피는 15년 가까이 살았다. 

요즘은 개 수명이 상당히 늘었지만 그래도 장수한 셈이다. 


12살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종일 잠을 자고 눈도 귀도 어두워졌다.

집에 나갔다 들어와도 소리를 못 들어 반기러 나오지 않고 도리어 내가 자고 있는 제이피를 찾으러 갔다. 

그때 즈음부터 슬슬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갑자기 개가 떠나면 엄마가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 아이들은 걱정을 했고

개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개가 나이 들면 스스로 집을 나가서 주인이 모르는 다른 곳에서 죽는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했다.


그때의 바람은 내 손으로 제이피를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마지막을 보지도 못하고 혼자 외롭게 떠나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한 세상 태어나 살다가 제 새끼도 못 가져 보고 떠나는 개 한 마리 제이피가, 

아무도 그 존재를 기억하지 못한 채 사라진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물론 새끼를 낳지 않도록 한 것은 제이피를 위한 최선이었지만 인간이 아닌 개라는 존재 자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의 기억조차 이 지구 상에서 증발해버리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두어야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쓰려고 하면 눈물부터 터져 나왔고 내 감정에 북받쳐서 다음날 글을 읽으면 도저히 눈뜨고 봐줄 수 없을 만큼 유치하고 부끄러워 결국 지워버렸다.


제이피가 내 곁을 떠난 지 13년이 흘렀고,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줄 알았던 나의 강아지 삐삐마저 떠난 지 일 년이 다 되어서야 

나는 이 글을 거의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나와 함께 해준 나의 개들을 기억해주기 위한 글이..


Frank Bramley (1857-1915) - When the Blue Eveninig Slowly Fa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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