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없인 못살아

외지인 생존기

by 김재홍

“나, 산골에서 떠나고파!”

“당신은 나를 산골에 가둬 두고 있잖아!”


집사람의 이유 있는 항변이자 산골에서의 삶에, 최대 위기가 닥친 거야.

T V 가 제대로 나오나 신문이 있나

친구들을 볼 수가 있나.

거기다가 전화마저 없으니 말이야.

집사람 말이 맞아.

산골에 집사람을 가둬 버린 거야.

버스는 하루에 두 번이니 내가 출근하면 산골이라는 감옥이 맞지.


30대 초반 산골에 살자고 마음 굳혔어.

웬만한 것은 버리고 포기해야 할 삶인지도 잘 모르면서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도전을 한 거야.

5살 아들 3살짜리 딸네미 집사람

이렇게 모두 4 식구가 말이야.


아니, 여기서 도전은 나 혼자인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 둘은 그렇치만,

집사람은 반대였거든


살고픈 곳을 정해 놓고선 집사람한테는 말을 못 하고 한참을 지났어.

기회를 엿본 거야.

집사람도 마음이 끌릴만한,

멋진 모습이 연출되는 때를 기다리며 말이야.


추석 때쯤으로 기억돼. 밤송이가 주렁주렁 달리고

주위 논에는 벼들이 황금빛을 발 할 때야.

제법 큼직한 은행나무의 노란 잎은

산골 전체를 포근한 안식처로 보이게 하고

갈대위의 빨간 잠자리와 조잘조잘 흐르는 시냇물 그리고 저 푸르고 맑은 높은 하늘,


젖소 목장으로 쓰이고 있지만

저쪽 언덕 위에 그림 같은 하얀 집을 짓고

소들이 놀고 있는 저 마당을 잔디로 가꾸어

꼬맹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게 하고

소들의 분뇨를 쌓아 놓은 저곳은 흙을 메꾸어

가지랑 토마토랑 고추랑 이런저런 채소밭을 만들고

저 아래 개울 옆엔 고기들이 노는 연못,

바로 그 옆엔 우리 가족 전용 풀장 주위엔 가지 각색의 유실수를 심고....


한참을 꼬셨어

우리가족이 평생을 살아갈

"에덴의 동산을 만들어 가자"고 말이야.


절대 불가를 외쳤던 집사람이

조금씩 넘어오는듯....


자연의 완벽한 하모니가 마음을 움직여


통했어, 넘어온거야.

저 은행나무와 잠자리와 시냇물이 함께

집사람을 유혹한 거야.

30대 초반에 그림 같은 집을 지을 돈은 없지,

앞으로 벌어 짓자는 거였어.


그렇게 그렇게 우리 가족의 산골 생활이 시작 됐어

어려서부터 꿈꿔오던 자연 속에서 의 생활이 말이야. 개울을 건너면 이웃집이 하나 있고

그 아래로 여러 채의 집들이 옹기종기 그런 한적한 시골마을이야.

조그만 야생동물들도 잘 사는데

내 못 살이유가 없지! 하며


산골에서의 삶을 시작했지

지금 같으면 스카이라이프 하나로 해결되지만 안테나를 높게 더 높게 올려 그래야

KBS 1 정도 희미하게 보이지.


비포장 도로는 아예 거론 거리도 아니고

전화는 10킬로미터는 가야 있어,

핸드폰이 어딨어?

백색 청색 전화이야기도 모르지?

약국 병원은 차로 30분.


지금은 한시도 없이는 못 사는게 전화인데

이 산골에서 동물들과 꽃하고만 살라하니...

골에 갇힌 집사람이 비장의 카드를 내미는 거야


"전화 없인 못 살겠다"는 거야.


전화를 신청하면 한참 한참 몇 년을 기다려야

배당이 되던 때야.

그리고 전화 전주가 없어 20여 개의 전주를 심어야 해. 또 선로 값도 따로 지불해야 한데.

큰돈이지.


당시 내가 산 산골집보다 더 큰 부담이야. 전기 전주는 있어도 그곳에 전화선로는 깔 수가 없는 거야.

그건 한전 꺼래,

고민 고민 하다 전화국을 방문했지.

말이 통하는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길이 있을 것도 해서 말이야.


지금은 잊었지만 무슨 과장이야.

안면이 조금 있어 저녁에 소주 한잔하기로 약속을 하곤 뇌물(?)을 좀 챙겼어

산골에서 생산된 고구마, 밤, 은행,

그리고 T V 사면 하나씩 사은품으로 주는 밥공기 세트를 잘 포장했어 정성을 들여서 말이야.

나하게 취할 때 까지도 전화 얘기는 하지 않았어. 산골에 사는 이야기만 했어


우유를 주기 위해 산양을 키운다니 가보고 싶다는 거야. 뇌물(?)을 줄 용기도 없어 주지도 못하고 해어졌지

그리곤 그를 초대했어


잔디밭에 비치파라솔을 놓고

그 옆에 숯불 삼겹살을 굽고 고추,

상추가 떨어지면 밭에가 직접 따와 먹고

우린 거나 하게 취했어,

온 세상에서 제일 친한 사이가 된 것처럼 산골이야기며 세상이야기며 정치 이야기... 다시 산골이야기... 밤이 새도록 말이야.

취했어 둘 다 말이야.


이 사람 차가 없어 내가 태워 줘야 하는데

내 엄청 취해 갈 수가 없잖아.

자고 가라 했지, 산골에서 자는 맛도 괜찮다고 말이야. 그랬더니 이 친구, 집에 전화를 해야 한다는 거야. 여기서 자고 간다고 말이야.

전화 어디 있느냐고 나한테 물어 당연히 우리 집에 전화가 있는 줄 알고 말이야.

전화를 하려면 10킬로는 가야 하는데.....


길이 있으면 이렇게 생기는 거야.

이 친구 이렇게 험한 취약 지구에 전화하나 없으면 안 된다는 거야.

불이 나도 그렇고, 응급 환자가 발생해도,

특히 무장간첩이라도 나타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나에게 물어


허허 동두천 전화 책임자가 나한테 묻고 있어.

왜 전화도 없냐고.

일이 급속히 진전되더군. 당시는 읍이었는데

읍장의 결제까지 척척 끝났어.


한 푼 안 들이고 전화를 놓는 거야.

공짜 행정 전화를 말이야.

그런데 동네 어떤 집이든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도록 전갈은 해야 한데.

이 첩첩 산골에 내가 전화를 들여오는 거야.

어때 "나 쓸만한 사람이야" 하며 어깨를 펴고 다닐만하지.

이 타향에서 말이야.

턱거리 삼거리에서부터 전주를 박아 오는 거야.

20여 개를 말이야.

길옆에도 박고 논두렁에도 박고 개울 뚝에도 박고 하나하나 우리 동네 우리 집 쪽으로.. 하하

우리 집사람 꿈하나 잘 풀어주는 능력 있는 남편이야.. 하하


헌데, 하나하나 박아 오던 전주공사가

중단이 된 것 같아.

숫자가 늘지 않아 중간에서 스톱이야.

전화국엘 갔지. 문제가 생겼어,


동네사람이 자기 논 밭에 전주를 박지 못하게 한다는 거야.

벼 한 포기 배추 한 포기가 중요하지,

무슨 놈의 전화라는 거야.

전화의 중요성을 역설해도 소용없어

전화가 우리 집에 들어오면

아저씨도 전화 놓기 쉬워진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거야. "


김 씨, 나 전화필요 없어, 전화 올 때도 걸 때도 없는데 무슨 전화'라는 거야

동의를 받아야 할 사람이 7-8명이나 되는데 모두 같은 소리야. 와 이런 촌놈들이 있나.

세상에...


그 어려운 일을 성사시켰는데, 뭐! 벼 한 포기 배추 한 포기... 와 열받아 열받아..

공사는 중단된 채 끝났어.

전화국 친구도 난감해해. 반납하는 길 밖에 없을 것 같다는 거야.


나 역시 집사람 같이 이사 가고 싶더군.

이런 사람들을 이웃으로 두고 어찌 사나 하며 말이야.

헌데, 진짜 이유는 우리 집에 전화를 설치하는 것에 반발이었어.


외지 사람집에 설치하는 것을 반대하는 거야.

내가 노력해 성사시켰어도 우리 집이 아닌

다른 집에 설치하도록 했어야 했지.


맞아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거야. 새마을 지도자와 타협했지

그 집에 놓도록 말이야.

내가 잘 몰랐던 거지

양보하는 것도 알아야 하는데 말이야.

촌사람들이라고 얕잡아 본거야.


동네에 전주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우리 집은 전주 세 개를 자비로 놓고 개통식을 먼저 했어.

읍내 매장에 있던 전화를 옮겼어.

새마을 지도자보다는 먼저 개통하고 팠어,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말이야.


그리곤 동네분들을 모셨어. 죄송했었다고.

제가 원래 욕심이 많아 문제라고 말이야.

막걸리잔들을 부어 드렸어.

많은 덕담이 오고 갔지.

김 씨 덕분에 이 동네 전화가 10년은 일찍 들어왔다며

이 동네 숙원사업 중 하나인

공동 안테나 작업을 추진해 보라는

부탁의 말도 듣고.


그리곤 전화를 여러 곳에 놨어.

개울가 그물침대,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돼지분만실, 그리고 팔뚝만큼 큰 가지,

땅콩, 감자를 생산하는 밭 옆에도 말이야.


시냇물 소리만 들려오던 그물침대에

따르릉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산골에서 어울리지 않는 소린 분명해,

벨소리를 산새 소리로 바꾸면 좋을까?


그땐 그냥 " 따르릉 " 뿐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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