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핑크복어 Sep 26. 2021

내가 우울증이라고요?

우울증인지 몰랐던 한 사람. 나는 현재의 삶에 충분히 만족했다.

2021년 2월. 당시를 회상하자면 아무 생각이 없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나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이지만, 시간이 많이 지났고, 독립을 했으며, 여느 때 보다 평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내가 우울증임을 자각하지 못했던 첫 번째 이유였다. 


나는 현재의 삶에 충분히 만족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생각보다 잘 자랐습니다>의 만화 작업이 한창이던 때. 그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조금 힘이 들었으며, 작업을 하다가 울기까지 했다. 하지만 슬픈 과거를 떠올리면 누구나 울지 않던가. 약간의 후유증과 함께 여운이 감돌고, 작품에 대한 생각을 하며 괴롭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일'에 관련된 스스로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의 후유증은 견딜 수 있다고 여겼다. 


다만, 내면에는 항상 '정신병원에 방문해야지'라는 목표의식이 있었는데, 청소년기부터 나는 정신 치료를 받고 싶어 했다.  사회 이목이 두려워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당시 사고의 반항 의식도 한몫했다. 그러나 청소년으로서 해결할 수 없는 나 자신의 '보험가입 여부'가 장벽이 되었는데, 이점은 아주 현실적인 문제였다. 


하지만 현재는 그 장벽이 해결되었다. 병원에 방문하고자 하는 의지도 있었다.  실제로는 2010년도부터 원한다면 언제든 방문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첫 방문이 2021년. 그 당시의 정신과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이 나에게도 존재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단순히 귀찮았을 수도 있다. 스스로는 후자에 좀 더 의견을 실어본다. 나는 귀차니즘 최강자니까!. 





아무튼 병원에 방문했다.(꽤나 충동적이었다) 설 연휴가 끝난 월요일. 정말 많은 사람이 있었다. 과거에 비해 인식이 많이 고쳐졌음은 인지하고 있었고, 실제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 상담 후기를 내뱉기도 하며, 치료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것도 보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처음 보자마자 든 생각은 중장년층의 환자들이 많다는 생각. 그리고 집에 돌아갈까를 수차례 고민 할 만큼 기다리기 지루했다. 


 나의 심리상태가 과거에 집착되어 있지만 않으면 되었다. 문제를 인지하고 방문한 것이 아닌, '문제가 없습니다' 소리를 듣기 위해 방문했기 때문에, 병원의 유명함과 유능한 의사가 있다거나, 치료 경과가 좋다거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집과 병원의 거리. 너무 낡고 오래되지 않은 곳. 이 두 가지의 조건만 충족된 곳을 골랐다. 



실제로 병원 선택에 있어서 환자들은 까다로울 필요가 있다. 상담 중심인지, 약물치료 중심인지, 첫 내원 시 검사는 몇 가지나 진행되는지, 어떤 데이터를 가지고 병을 진단하는지까지, 그 결과 값이 자신에게 신용과 신뢰를 얻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학병원인지, 개인병원인지, 심지어 의사 선생님의 성별이나 연령에 따라 내가 '말'을 하기 편한가, 불편한가를 결정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거쳐도 처음부터 의사가 나와 맞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에, 진단 이후에도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수차례 병원을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복 받았다. 처음부터 나에게 맞는 병원을 골라 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첫 방문 당시로 돌아가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많은 사람들 때문에 대기시간이 1시간이 넘었다. 총진료실이 4곳, 가장 대기시간이 짧은 원장님을 골랐음에도 그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그 후 대기 시간은 15분 내지 20분 정도로(예약제가 아닌 병원이다) 기다릴만했다. 다들 명절 이후는 피하자. 


평일 낮 시간, 그래서 중장년층의 사람들이 많았는지도 모른다. 이후에도 같은 연령대의 환자들이 많았고 가끔씩 2-30대의 청년들이 보인다. 내 또래의 사람들은 은근히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무언가 병을 안고 사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물론 가끔 피곤해 보이기도, 축축 쳐져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내가 있는 곳이 정신의학과 라는 명칭의 병원이 아니었다면 특별할 것도 없을 것 같았다. 그저 평범한 현대인 아닌가.




숱한 심리검사들 중 내가 가장 신용하게 된 검사는 스트레스 수치 검사였다. 과학이 증명한 나의 우울증. 

세상에-, 나의 뇌가 제기능을 못한 다니!! 그 결과가 그래프와 수치로 나온다니!! 나의 심장박동수가 정상이 아니라니!!! 모든 수치가 낮았고, 그 후 심리검사 결과와 결합된 우울증 진단은, 


"너의 우울증은 의사의 개인적 판단이 아니란다"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점에서 나의 또 다른 문제를 직면할 수 있다. '사람을 믿지 못한다'라는 것. 

아니나 다를까, 의사의 입에서 "사람 간의 신뢰도가 낮습니다"라는 말이 들려오며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결과가 나의 우울증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