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린 20년_회사와 가족을 돌아보며

어느 회사원의 회사 가는 길에, 나-가족-회사를 그리며

by 푸시퀸 이지

5월31일

카톡 대화명이다.

현 직장에 근무한지 만 20년 되는 날.

아이와 함께 고딩 진로 선생님을 만나는 날이기도.

진로, 말이 나왔으니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한때 연기자 꿈이 있었으나 어림 반푼어치 없는 소리로 뜬구름 속으로 생매장. 예술 같은 소리를 한 탓에 가장 빠른 취업으로 전공 선택해 그 길로 현 직장까지 직행 코스다.

난 자유로운 영혼, 강한 우뇌형, MBTI상 ENTJ, 애니어그램은 2번(날개로 3번) 유형, 다중지능검사에서는 음악, 언어지능이 높은 사람이다. 검사를 다 믿을 건 아니지만 아이큐로 내세우지 못하니 성격유형이라도 줄줄이 늘어 놓는다.

난 정규직도 아닌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그것도 단박에 붙기는커녕 누군가의 취소로 합격 의향 묻는 전화에 굽실대는 '감사합니다' 어조와 함께 입사했다. 그당시엔 블라인드 인사가 아닌 시대라 지방대 졸업 외엔 경력 곳간이 텅텅 빈 나로선 그럴 수밖에.

2002년 6월1일 입사해 이제와 돌이켜보니 들을 땐 독이었던 말들이 결국은 내게 득이 되었다(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나의 말과 문서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던 상사, 개인성과기록카드 단점 칸에 "잠재력 만큼 역량을 끌어내지 않는다", "소통 보단 혼자 일을 다 끌어안고 한다"던 상사, "기획조정실에서 훈련시켜 어딜 가든 적응하게 하라"는 원장...등등

내 성향에 반하고 뇌가 주눅드는 부서를 다니며 통계, 전산로직, 화면, 기획, 논리, 위원회, 보좌, 홍보 등등의 머리털 나고 처음 접하는, 전공과 동떨어진 일을 경험했다.

이 말을 들으면 아버지는 이리 생각할 수도 있겠다.

'누구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철판 자르고 야간에 병원 청소부 일을 했겠느냐'고.

어머니도 일심동체로 이리 생각할 수 있겠다.

'누군 햄버거 먹고 싶어 맥도날드에서 일하고 남의 집 구경 가려싶어 요양보호사를 했겠느냐'고.

그래서 아버지는 내게 이런 말을 했나보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by 시몬 드 보부아르)"이라고.

어머니도 가슴 아닌 귀에 이 말로 못을 박았나보다.

"습관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천천히, 꾸준히"

내 뱃속에서 낳아 익히 잘 알고, 연기에 미치고, 개그에 미치고, 음악에 미치고, 춤에 미친 것도 봐 와서 선수 친 한마디가 아니었나 싶지만

'어른 말 틀린 것 하나 없구나'를 느끼는 걸 보니 이제 나도 좀 어른이 되어가나 보다.

이보다 나은 인간 개조 학원이 또 있을까 싶다.

내 역량과 조직을 비교했을 때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은 아닐까 싶다. 가족이라는, 회사라는 '조직 학원'

받은 걸 음지 속을 헤매는 약자들을 위해 어떻게 되돌려 줄지가 앞으로 20년의 고민 거리다. 강해서 저절로 굴러가는 곳이 아닌 누군가의 도움 없인 일어서기 힘든 곳, 내 손길이 닿을 수 있는 곳,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릴지...

"저는 10년 후 사회에 봉사하며 사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신규직원일 때 교육 장소에서 일어나 발표한 내용이다. 20년간 조직은 우리집의 밑천이었다. 앞으로 20년에 원천이 될 것이다.

최근 떠들썩했던 청와대 요리사의 20년 경력도 아니고 30년 근무한 공로연수자에 비하면 코흘리개 경력일 테고, 누군가에겐 배 부른 소리일 수도 있다. 본능과 이성이 엎치락뒤치락 한 20년 세월로 자축의 의미일 뿐.

덩달아 축하라도 한듯이 입사일 6.1일에 지방선거일이 잡혔다. 6.2일은 서울에서 회의도 열린다. 그 김에 6.3일도 휴가 신청 하자꾸나. 몰핀, 세로토닌, 도파민의 날들이구나.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게 있다.

청바지를 입고 다닌다는 것

집인지 직장인지 모호한 차림도 받아주는 회사,

임원과 고객도 이해해 주는 이 곳

"핫 플레이스"인지, "프리존"인지...


청바지 컷 올리며 글도 CUT!

- 22.5.30.월, 원주행 고속버스 안 출근길에서 -


자식 뻘 되는 아이들, 끼워줘서 고맙네
청바지 아따 미끄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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