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부터 시작한 간호사 생활은 앉을 새 없이 병동을 빨빨 거리고 돌아다녀 그런지 몸속 문제 외에 더 드러나는 문제는 없었다. 26살에 현재 다니는 회사인 공공기관으로 이직하면서 새로운 질병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사무실 책상에 붙박이 자세가 화근이었다. 내게는 무늬만 근무시간이었던 9시-6시. 근무날도 월화수목금금금. 모든 업무가 새로운데다 조직 전체를 관리하는 업무까지 맡다보니 책임이라는 미명 하에 내 몸을 일에 갈아 넣게 되었다.
회사가 식구를 먹여 살리는 게 감사했다. 계약직으로 입사한 신분이라 승진으로 되돌려 받고도 싶었다. 회사 안팎으로 불러주는 자리에는 무조건 달려가 분위기를 주름 잡았다. 귀여움은 모르겠고 알코올은 주는 대로 한 몸에 받았다. 팀장을 동기 중에 가장 먼저 달았으니 ‘감사함’ 포인트도 두 배로 적립.
사무실이든 회식 장소든 장시간의 고정 자세와 스트레스가 뼈에도 영향을 미쳤는지 30대에 척추관협착증과 골감소증을 진단받았다. 허리뼈(요추4-5번) 간격은 숫제 없어 엉덩이관절부터 발뒤꿈치까지 방사통이 떠날 날이 없었다. 중턱도 넘지 않은 30대인데 60대 뼈인 퇴행성까지 있다니 타임머신이 고장이 나도 한참 났다.
평일에 열심히 일한 대가는 주말에 신경차단술로 보상받았다. 내 앞에 놓인 업무량이 줄지 않는 이상 나만 알고 있는 뼈다귀 문제가 무슨 대수라고. 멀쩡한 척 열정인 척 하다 하지정맥류 수술도 두 번이나 받았다. 한 번은 조퇴하고 수술 받고는 다음 날 출근, 또 한 번은 주말에 슬그머니 받고 월요일 출근.
누가 그렇게 살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통증과 매일 붙어사니 나 자신이 회사에서는 일벌레, 집에서는 돈벌레로 느껴졌다.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 맞이하는 하루에 감사하라는 말을 누군가가 했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안 아프고 안 쪼들리고 사니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느냐며.
아침에 눈을 뜨면 어느 부위 방사통이 좀 줄었는지 팔다리에 안부 묻기도 바빴다. 출퇴근은 회사가 서울일 때는 1시간 반, 강원도 원주로 이전해서는 통근버스 시간까지 더 보탠 2시간 반이었다. 하기야 출퇴근이든 사무실이든 그 어떤 자세로도 통증이 떠날 새가 없는데 이래저래 우울한 건 매한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