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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Dec 29. 2022

평소 성격 다 드러나는 퇴고

추석 맞이 이벤트로 투고를 했다. 추석 연휴 바로 다음날, 9시 땡 하고 20개 출판사가 동시에 편지를 받도록  했다. 추석 때 노릇노릇하게 부친 전 마냥 출간기획서와 목차, 샘플원고 6개를 이메일 보자기에 싸 보냈다. 내 성향과 블로그 글까지 간파한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는 다발총처럼 원고를 써내려 갔다. 이번에는 연말 이벤트로 퇴고본을 디자인팀으로 넘겼다. 


원고를 퇴고로 키워 분가시키니 속은 시원하긴 한데...   


여백을 채울 땐 몰랐다. 앞만 보고 달리니 알 턱이 있나. 두 달 퇴고 하면서 '나'라는 인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 가지만 꼽자면 1.지레 2.고집 3.생긴대로, 였다. 


가장 많이 고친 게 띄어 쓸 필요가 없는데 두 단어를 벌려 놓은 것이다. 거리두기에  이골이  났는지 빨간 밑줄이 생기겠거니 지레 겁 먹고 성큼 성큼 죄다 떼어 놓은 것. 한 단어로도 찰떡 궁합이더만 맞춤법 기능에도 의존하지 않겠다는 심보가 드러났다. 잔소리 듣기 싫어 미리 하는 성미도 찰칵.   


맞춤법 검사에서 한 단어가 맞다는데도 굳이 끝끝내 단어를 갈라놓는 건 또 뭔가. 글자들이 삼삼오오 모인 '정렬'과 '라임'이 눈에 밟힌다. 잿밥에 신경쓸지언정 주인장 잘못 만나 헤어진 걸로 다시 띄웠다. 또 간결한 문장 만든답시고 기껏 단타로 숱쳐 놓고 도로 원상복구 했다. 고치면 고칠수록 글이 좋아진다는데 정제된 언어가 나답지 않아서 붙임머리 만드느라 시간을 또 썼다. 고집 쎈 사람들 손가락질 할 게 아니다.  


첫 책 냈을 때 직원들 반응은 이랬다. 오디오북 틀어 놓은 줄. 코 앞에서 팀장님이 내게 말하는 줄. 블로그 이웃들의 반응도 온오프가 어째 이리 똑같느냐 했다. 명사의 조연인 조사. '은' '가' '이'. 삼파전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매끄럽고 자시고, 문장력이고 간에, 결국 평소 말하는 습관대로 붙이게 됐다. '생긴대로'가 내게는 '자연스러움'이었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매일 퇴고하니 듣기평가도 달라졌다. 음식점에 와서까지 점원과 고객 대화에서 중복 단어와 어정쩡한 조사를 찾고 앉았다. 주어가 등장할 땐 어떤 서술어가 펼쳐질지 다음 편 드라마 기다리듯이 귀를 쫑긋하고 있었다. 오, 어순을 저렇게 쓰니 기분 덜 나쁜데? 음, 그 단어 사람 참 설레게 하는 걸. 북 치고 장구 치는 나. '강박증'인가, '몰입중'인가. 내 성격을 퇴고할 판인데.


반복, 재방송, 리바이벌에 질색팔색인 나.

나도, 삶도 되돌아보는 걸 보니 

끝도 없는 게 퇴고라는 말, 맞긴 맞나 보다. 


2022년을 퇴고 하며

2023년을 수정하련다. 








*이미지 출처

:https://pixabay.com/ko/photos/%eb%85%b8%ed%8a%b8%eb%b6%81-workstaion-4906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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