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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Jan 09. 2023

네가 생각 나서, 라는 말이 생각 나서

22년 끄트머리와 23년 초입, 샛길에서 복을 받았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내가 앉을 자리가 있다는 건 분에 넘치는 선물이다. 오죽했으면 내 묘비명을 "또"라고 지었을까. 두 번 다시 보고싶지 않은 인간이 아닌, 또 한 번은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살고자. 누군가가 나를 떠올리고 한 마디를 건네줄 때 내가 보는 '나'를 넘어 남이 보는 '나'도 알게 된다. 좋은 말이면 '다짐'으로 나쁜 말이면 '개선'으로 써먹기도 한다. 


내가 생각났다는 그들을, 내가 다시 생각해 본다. 


22년 크리스마스 직전 직원들이 점심을 함께 하자 했다. 지난번에도 시골쥐가 서울구경하는 꼴이었는데 이번에도 팀장님이 생각났다며 신세계를 데려가 주었다. 반찬 걱정하는 주부의 애환을 담은 센스며, 끼워주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섬유질과 단백질로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다. '입맛까지 까다로운 인간'이라 여기지 않고 ‘나’로 기억해 주어 고맙다. 수라상을 받은 것만 같았다. 


22년 마지막 금요일. 원주 본원의 타부서 부장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22년 한 해를 잘 살아온 것 같고 수원으로 발령 나서도 잘 지내는 것 같아 생각나서 연락했다고. 업무적으로 연계가 되어야 안부까지 쓸어 담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뜬금없이 누군가가 불쑥 생각이 났더라도 소소한 안부라도 전해야겠다. 23년 다짐에 한 줄 추가. 당신이 생각났다, 이 말 한마디라도 꼭 전하자.       


23년 새해 일주일이 흐르는 동안 곰탕 시리즈를 받았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곰탕집인데 멋진 팀장님으로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어 보냈다고 했다. 5년 전 함께 일한 직원의 ‘원주에 다시 오면 그 밑으로 들어가 일하고 싶다’, 타부서 팀장의 ‘호주 출장 때 하루도 빠짐없이 달리기를 하던 사람으로 기억 된다’는 메시지. ‘나아갈 길과 내려놓음 사이에서 지혜를 발휘할 사람’, ‘마음이 많이 쓰이는 한 사람’, ‘응원을 하고 싶은데 좀 쉬었으면 하는 안쓰러움이 자리한다’,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더 오래 산 것 같다’는 상사들의 메시지,  


누군가의 머릿속에 남는다는 것. 직급이 올라갔을 때보다도 높은 승진 자리다. '이 인간이 정말...'하며 윗니아랫니 들러붙게 생각나는 사람이 아닌, ‘어렴풋이’ ‘어쩌다’ ‘우연히’ ‘툭’ 한번쯤 생각나는 그런 사람이길 희망한다. 


머릿속에 백 번 자리하느니 한 번이라도 입 밖 세상을 구경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마음 배달의 미숙아지만 새해에 힘 받아 떠오르는 마음도 식기 전에 배송하자. 


2023년, 누군가에게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채식을 좋아하는 나, 직원들이 데려간 뷔페집에서 일번 타자는 무조건 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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