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열십자 한 복판에 있다. 나름 명당자리에 있지만 사람들 눈 밖에 나 있다. 엄연히 척추, 골반, 꼬리뼈 사이에서 떡하니 중심잡고 있는데도. 다름 아닌 엉치뼈(천골)다. 내 이야기다. 척추 끄트머리에, 크나큰 엉덩뼈(골반) 사이에 낀 주제, 라고 업신여겼다. 그것도 4-5개 척추몸통이 삼각형 하나로 퉁을 쳤으니. 다른 척추마냥 서로 분리되어 브레이크댄스 하나 추지 못하니. 꼬리뼈 퇴화와 같은 운명으로 취급했다.
천골의 존재감으로 세상이 달라졌다. 천골이 세워졌을 때와 아닐 때, 주변 국가(척추, 골반)들과의 동맹을 이룰 때와 아닐 때 세상은 천지차이였다. 자세와 움직임에서 천골을 느끼면서 '행복’ 뼈가 심어졌다. 떠받들어 모실, 전관예우를 베풀고도 남는 곳이었다. 내 몸의 용궁이랄까. 천골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설 정도로 ‘나’를 세워준 뼈다. ‘척추 기립근’도 나를 일으켜 세워준 근육인데 이상하네 하고 봤더니 역시나. 기립근의 시작점이 천골이었다. 감탄에 취해 서론이 길었다. 무늬만 뼈가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새기며 그럼 살펴보자.
앞면은 매끄럽고 오목하다. 화석처럼 합쳐진 척추뼈의 구멍이 있다. 구멍 사이로 엉치신경(천골신경)이 흐른다. 뒷면은 거칠고 볼록하다. 뒷면에도 구멍이 있다. 어마어마한 신경, 척수가 지나간다. 천골은 대구법을 이루는 한 편의 시, 음양이 있는, 양면성이 존재하는 만물을 대변하는 것 같다.
천골 옆면은 귀 모양으로 생겨 엉덩뼈(골반)와 관절을 이룬다. 움푹 들어간 천골 귀에 튀어나온 골반 면이 만나 엉치엉덩뼈관절(천장관절)을 이룬다. 이 복잡한 이름을 굳이 말하는 이유는 골반을 앞뒤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중요한 관절이기 때문이다. 한 생명을 세상에 존재하게도 하는 움직임이니 이 얼마나 신비로운가. 내가 태어날 때 목이 걸려 죽을 고비가 있었던 건 엄마의 힘이 문제가 아니라 골반의 움직임일 수도 있겠구나. 출생의 비밀까지 파헤쳐 본다.
엉치뼈 윗면은 다섯 번째 허리뼈와 만나 관절을 이룬다. 난 허리뼈 4-5번 사이가 들러붙은 협착이다. 열심히 움직이는 이웃(척추-엉치뼈) 덕에 눌린 신경이 구제됐다. 엉치뼈 아래 면도 꼬리뼈와 관절을 이룬다. 관절이란 모름지기 움직이는 존재임을 명심하자.
천골과 싸잡아 묻혀 지낸 꼬리뼈. 꼬리뼈도 3-5개 뼈들이 합쳐졌다. 동물들에게는 독보적인 핵심 뼈지만 엄마 뱃속에서 이미 인수합병 되었으니 천골과의 연결로 의미가 깊다. 천골에서 뻗어 나온 꼬리뼈는 임신8주 정도에 싹둑, 말끔하게 정리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꼬리뼈를 말아라, 는 말은 운동하는 사람이라면 숱하게 들었을 것이다. 천골과 골반을 뒤 방향으로 기울일 때, 복부를 동그랗게 말아야 하는 움직임에서 그 큐잉이 쓰인다. 척추를 하나하나 분절해서 움직일 때도 ‘꼬리뼈’지점을 콕 찍어 표현한다. 천골에 붙은 꼬리뼈를 머릿속에 넣어두니 역시나 움직임이 달랐다. 등허리 어딘가에서 대충 움직임이 끝날 것도 꼬리뼈 끝까지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꼬리뼈가 지휘봉이다.
이젠 몸을 중립으로 맞출 때 1번 타자는 천골이다. 처음에는 이러다 허리가 꺾이는 거 아닌가, 천골이 움직일 수 있어? 했는데. 그동안 나름 편안했던 자세(뒤로 기대는)로 골반이 중립 담장을 넘었었다. 천골 자체가 등받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로써 행복이 하나 더 늘었다. 천골 뼈마디의 느낌이란. 이 연세에 아기 낳을 일은 없고. 일상에서 천골이 골반을 이리저리 움직여 가지고 논다. 남성보다 큰 골반을 지녔으니 큰 움직임으로 특권을 누려본다.
젊었을 때 이 원리를 미리 알았더라면 나 역시 2박3일씩이나 걸려 자연분만 실랑이를 하지 않았을 터인데. 내 몸 정 중앙에서 꼿꼿하게 세워주는 천골. 비단 몸에만 해당되는 균형은 아니었다. 좋고 싫은 현실 속에서 천골의 본보기가 나를 잡아준다. 용궁 같은 천골을 떠받들어 모시지 않을 수가 없다.
퇴화되지 않은 다른 기관들도 나이 들면서 ‘노화’로 인한 퇴화를 맞는다.
주변 신경 쓸 시간에 내 몸 속 아이들에게 관심을.
*출처: 근육뼈대계통 제6판(범문에듀케이션), 움직임 해부학(영문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