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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Mar 20. 2023

단 한 사람

글을 쓰는 힘은 단 한 사람이라도 읽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글을 기다리는 이가 단 한 사람이라도 존재하기 때문이죠. 아이는 제가 책을 낼 때 제목을 선물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출판사가 제시한 제목에 반기를 들며).


"엄마, 많이 팔리는 책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이라도, 죽고 난 이후에도 누군가에게 남는 책이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하여 저를 믿어주는 아들 힘으로 <내 몸은 거꾸로 간다>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책을 낸 딸을 보더니 내일 모레면 팔순인 아버지도 책을 냈습니다, 한때 전 내가 이리 숨가쁘게 사는 이유는 '경제'와 앙숙인 아버지 때문이라는 원망을 품었었습니다. 그 어떤 물질로도 용해되지 않는 앙금이라 생각했는데....


아버지 책 <단독보도>가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나름대로 끌어안은 앙금 알을 깼습니다. 금시초문 이야기들이 앙금 녹이는 명약으로 작용하네요. 아버지 저자소개에 뒤통수 한 대 얻어 맞고 프롤로그에 또 한 번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단독보도> 프롤로그에 담긴 부녀 합동 출판기념회에 오신다는 단 한 사람을 위해 이리 또 글 쓰는 힘이 나네요. 그 누구보다도 바쁘고 어려운 상황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헛걸음이 되지 않길 바라며...






저는 지금 저와 맞짱을 뜨고 있습니다. 상대가 남이 아니라는 것이 더 버겁습니다. 싸움은 질질 끌었습니다. 칠순도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명분마저 사라져 더 질질 끌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딸애가 책을 냈습니 다. 오기가 발동했습니다. 그래서 질렀습니다.


“책을 한 권도 못 내는 사람은 있어도 한 권만 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딸애는 반드시 책을 한 권 더 내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 다. 다음번 출판기념회는 부녀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하겠습니다.”


와인은 오래 묵을수록 값이 나간다지요? 값이 나간다는 말은 맛과 향이 좋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제 글도 오래 묵었습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잘 밀봉해 두었으니까 곰팡내는 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래 수다를 떨어 죄송합니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는데 여러분이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이욱의 <단독 보도> 프롤로그 中 -



  

하하, 새아버지가 생겼다.

아버지 글을 읽었다. 보릿고개 시절 아버지는 어디 가고 생각은 젊디젊은 소년, 문체는 청춘을 뺨친다. 한 때 원망이라는 스펙트럼 안에 놓였던 아버지,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은혜'와 '감사'의 강을 건넜기를 바란다.


한 사람의 성장배경을 알면  이해 못 할 말도, 수용 못 할 행동도 없다는 걸 아버지의 글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다. 들어야 하는 딸이라서 죄송하고, 이제라도 알아서 십년감수했다. 더욱이 아버지의 편지에 반해 결혼했다는 어머니, 이 글로 말미암아 결혼 50주년이 무색하지 않게 되어 다행이다.


아버지 글을 통해 신경숙 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와 인순이의 <아버지> 노래를 반려로 삼은 사실을 고백하며, 최근  <내 몸은 거꾸로 간다>를 아버지 먼저 출간해 죄송했는데 독자의 사랑만큼은 거꾸로 되기를 바란다.   


- 이욱의 <단독 보도> 뒤표지, 작가 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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