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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May 10. 2023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남이 차려준 밥상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떠올랐다. 비바람이 한창 기승 부리던 지난 주말 연휴, 사진 촬영으로 집을 나서니 말이다. 정장 입은 사진이 필요했다. 평소 내 행색을 보면 딱 봐도 없게 생겼다. <내 몸은 거꾸로 간다> '옷' 파트에서 언급 했듯이 내 옷의 스펙트럼은 지난 10년 사이와 10대 아들에게 물려 받은 옷이다.  각종 강연에서 프로필 사진을 운동 사진으로 버티고 버텨 왔는데.


잡지사(우먼센스 7월호)에 보낼 사진은 좀...


사진 촬영 장소는 <스튜디오애플>로 정했다. 감각에 의존하고 의사결정 단계 줄이기를 좋아하는 성향에 간택 당했다. 네이버에 '프로필 사진 잘 찍는 곳'을 검색해 줄 지어 나온 곳들을 1차서류 심사 하듯이 주욱 훑었다. 기업 가치와 업무 프로세스, 샘플 사진 등등... 스튜디오애플. 매일 아침 식탁에서 내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애플'. 삶의 중추로 여기는 '애플'힙. 간판도 괜히 끌린다. 헌데 주로 연예인을 촬영하는 곳이다.


정장과 구두 사러 싸돌아 다닐 일, 미적감각 마비로 결정장애 겪을 일, 헤어 & 메이크업으로 미용실 들를 일... 머리가 지끈지끈 맹맹이다. 남성 상사를 모시는 것 같다는 직원 멘트가 하는 짓 만을 겨냥해 한 말은 아닌 듯.


튜디오에 전화해 정장 좀 빌려 달라는 둥 위 고민을 털어 놓았다. 주말 일정과 원스탑 촬영이 가능하겠느냐고.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이 이렇게 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했다. 신심이 두터운 사람은 아니지만 요 말은 찰떡같이 믿는 구석이 있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결국 스튜디오에서 헤어, 메이크업, 의상, 신발 스타일리쉬, 사진 촬영까지 한 방에 끝냈다. 중간에 어레인지 한 스튜디오 매니저님은 연예인 아닌 일반인이니 50% 부담으로 조율까지 해 주었다. 패션 트렌드도 모르는 데다 남이 보는 '나'도 궁금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코디, 컨셉 모두를 그저 맡겼다. 사진 촬영 하면 피곤이 몰려 오는데 그것도 비바람 가르며 두 번이나 전철을 갈아 탔는데 친목 모임 다녀온 양 힘이 솟았다(폴댄스까지 하고 들어갔다).


한 컷 한 컷 찍을 때마다 머리칼, 옷 매무새, 스타일과 표정을 연륜으로 잡아 주었다. 21년차 라빈뉴 헤어 메이크업 대표님, 옷에 맞춰 머리와 화장도 세 번이나 바꿔 주었다(다 돈인데). 스튜디오 사진 작가님은 사진이 아닌 삶을 찰칵 찰칵. 굵고 짧은 멘트가 예술이었다. 그저 난 흘러가는대로 몸을 맡긴 유스풀.


역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남이 차려 준 밥상!


눈에 보이는 물건이든 보이지 않는 역량이든 뭐 하나 취하면 본전 뽑는 '나'이니 이 사진도 두고 두고 널리 널리 활용 되리라. 아니면 또 어떤가. 그날 하루 4명 손길에 그토록 호강했는데.


직장 생활 21년차에 정장 입고 찍은 사진은 달랑 하나다. 그것도 원장님이 실물과 달라 지적해 아들 교복 반명함판 찍을 때 꼽사리. 정장 감가상각비까지 고려하면 충분히 지불하고도 남을 비용이다. 그 힘든 쇼핑과 치장 시간 할인 된 것도 어딘가.


진정 운수 좋은 날이었다. 따스한 장소, 사람, 경험을 가슴 한 가득 싣고 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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