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는 32살에 진단 받은 협착증에, 신경차단술로 일상을 연명하던 터라 내 몸의 핫플(레이스)로 인식되었다. 목은 일자목이니 거북목이니 습관을 고치라는 둥의 처방이었지만 병원 신세는 매한가지였다. 허리, 목은 X-Ray까지 동원해 들여다보는 관심병사였다. 중간에 낀 흉추(등)는 아프다 소릴 하지 않으니 몸과 삶에서는 논외였다. 경추(목) 7개 - 흉추(등) 12개 - 요추(허리) 5개, 제아무리 흉추가 가장 긴들 목과 허리에만 관심이 쏠렸다. C자인지 일자인지, 꺾였는지 구부러졌는지, 목 허리 기울기만 신경썼다.
흉추에도 커브가 있다는 걸 필라테스 하면서 알았다. 경추, 요추는 앞으로 구부러지고 흉추는 뒤로 구부러진 게 정상 만곡이었다. S라인 미인은 척추를 두고 하는 소리였다. 하루 종일 어깨, 등이 구부러진 자세인데 흉추를 앞으로 구부리는 걸 제일 못하는 게 참 아이러니 했다. 흉추를 뒤로 제치는 거야 협착증에 안 좋다는 소리에 기대를 안 해 그런지. 그뿐인가. 옆구리를 길게 늘려 흉추를 옆으로 구부릴 때 조차 허리가 아팠다. 척추를 양 옆으로 돌리는 척추 회전 동작은 또 필라테스에서 어찌나 많이 등장하는지.
모두가 흉추를 움직는 동작이다. 정작 주인공은 꼼짝 않고 주변 조연만 나대는 꼴이었다. 흉추가 구부러지든 펴지든, 회전을 해야 하는데 목과 팔만 움직였다. 나름 운동을 5년 넘게 했는데 흉추로서는 총체적 난국이다. 척추를 회전시킬 때는 필라테스 선생님이 내 몸통을 비틀어야 했다. 1년 정도 하니 오른쪽 방향으로 겨우 됐다. 왼쪽도 이젠 돌아가지만 오른쪽 성능에 비하면 노력이 더 필요하다. 나이 먹을수록 몸이 굳는다고 한다(나이 지긋하신 분들의 지론이다). 난 20-30대에 지긋지긋하게 굳어 있었다. 젊었을 때 떠넘긴 일까지 40대에 풀어야 했다. 40대 들어서도 등을 꼿꼿하게 펴주는 척추기립근(척추세움근)만 신경 썼지 흉추 생각은 못했다. 감자탕을 발라 먹던 날, 분절분절 잘도 떨어지는 뼈마디를 보니 사람 몸은 더 부드러울 법도 같았다.
경추와 흉추는 똑같은 양으로 움직인다는 '경추흉추의 법칙'이 있다. 목과 등은 같은 양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목이 먼저 이동하면 등이 움직일 수가 없다. 난 흉추가 움직이는 양까지 경추가 다 갖다 쓴 셈이었다. 내가 당해 보니 다른 사람들도 유연성이 좋지 않다고 섣불리 판단할 게 아니었다. 원리를 몰라 그렇지 안 되는 건 없었고 뻣뻣한 건 존재치 않았다. 흉추는 단지 목과 허리를 붙드는 기관이 아니었다. 흉추를 통하지 않고서는 모든 움직임이 통하지 않는 교차로다.
흉추 가동성에 따라 움직임 범위와 실력 차이는 상당했다. 팔, 다리를 뻗고 접히는 정도는 흉추 가동성이좌지우지 했다. 세면대 앞에서 상체 수그려 세수나 이 닦는 와중에도 흉추를 구부리고 펴는 나 자신에 깜짝 놀랐다. 바닥에 어질러진 물건이나 아래칸 서랍 정리를 척추 롤러코스터로 할 때 그 희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양말과 옷, 책, 가방 등등에 잔소리 할 게 없다. 흉추 굴곡 시리즈를만들어 준 아들에게 고마울 뿐. 흉추 굴곡에 한 술 더 떠 뻗정다리로 햄스트링도 자극하고 심호흡으로 횡격막도 건드린다.
흉추 개수가 경추나 요추 만큼 있었다면 서운할 뻔 했다. 즐길 거리가 12개나 된다. 흉추 안에서도 일 하지 않는 척추가 있다면 나머지가 그 이상 일을 해 허리에 탈이 난다. 어딜가나 업무 분장은 공정해야 한다. 요가의 쟁기자세나 필라테스의 롤오버처럼 두 다리를 머리 뒤로 넘긴 동작에서는 바닥에 흉추를 하나씩 내려두어야 한다. 흉추로 점을 콕콕 찍어 점선 따라 잇는 그 느낌, 많은 이들이 당해 봤으면 좋겠다. 건강 인증서의 바코드와도 같다. 흉추가 부드럽게 움직일 때 숨도 편안하다. 흉추가 틀어져 있으면 자세 잡는 데 에너지를 사용해 체력도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