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눈물을 부르다

-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책과 강연으로 울음보 터졌다 -

by 푸시퀸 이지


마늘을 설익히면 완전히 익힌 마늘은 물론이거니와 생마늘 보다도 맵지요. 저도 설익은 사람인지라 어쭙잖은 똥고집 하나가 있습니다. 책과 우연히 만나면 내 마음을 움직였는지 간을 보고 동행할지를 결정합니다. 내 마음을 파르르 떨리게 한 책이 있었어요. 바로 정재찬 교수의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인데요.


책에서 나오는14가지 인생 키워드는 타로 점을 본 것 같았고요(실제로 점을 본 적은 없어요). 담긴 시며 소설이며, 꿈보다 화려한 해몽이 어깨춤을 추게 했습니다. 신나서 흔들린 어깨춤 말고요. 마음 떨림이 어깨까지 전달되어 흔들리고 만 것이지요. 저자인 정재찬 교수님이 궁금해졌고, <시를 잊은 그대에게> 책도 손에 넣게 되었는데요.


이 책은요. 어찌 이리 편안하게 넓이와 깊이를 맛 보게 할까, 이 한 줄 한 줄에 수많은 경험이 녹아들어간 걸까, 문장 배열은 가지런한 서랍장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고요. 더도 덜도 말고 '한인생'만 같아라, 라고 말하는 것도 같고요. 담백한 맛이 딱 알맞은 양만큼 밥상이 차려져 있어요. 인생을 있는 그대로 보고, 뒤집어도 보고, 되돌아도 보게 만든 책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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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발전소 위례점, 정채찬 교수 강연



그러던 차에 '책발전소 위례점'에서 강연회를 열지 뭐에요. 180명 좌석을 코로나 거리두기로 50명만 뽑았는데요.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센스! 당첨되어 늦은 저녁에 저자강연을 다녀왔지요. 5월이 가정의 달이기도 하여 북토크는 14개 삶의 언어 중 <돌봄>으로 진행됐어요. 내 아이를 돌봄과 동시에 부모를 돌볼 때가 오니 말이죠.


정재찬 교수님이 출연했던 JTBC <톡투유>에 실린 양희은 노래로 강연은 시작됩니다. '엄마가 딸에게'가 폴김과 부르면서 아들이 됩니다. 이를 비롯해 강연내내 삶과 단어를 서로 잘근잘근 씹었어요. 1시간 반이란 시간이 눈 한번 깜빡이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 같았죠. 시작부터 심상치 않더니만 제 눈이 더이상 감당 못하는 순간이 도래했습니다.




게다가 교수님의 강연은 성우 같은 음성으로 일일이 낭독을 하지 뭐에요. 이 시에서 그만 눈물이 거침이 없더군요. H2O가 가슴 불에 끓어 그런지 끓는점에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자식 이야기도 간신히 통과시켰거늘. 강연장 맨 앞 가운데 자리에 앉아 이런 꼴을... 다행히 마스크는 안 젖고 마스크 틈 사이로 눈물이 기어들어갔어요.


강연 이후 집에 돌아와 제가 다시금 낭독했습니다. 우리 엄마는 혼자 발톱을 깎지 못해요. 발도 비정상이라 주기적으로 거북이 등껍질을 파내야 걸을 수 있죠. 최근엔 조카가 대행자 노릇을 했더군요. 헌데... 같은 말을 100번은 해야 입력이 되겠냐며, 몸이 그지경인데 아직까지 왜그리 건강에 안 좋은 일만 하느냐며...툴툴댔으니 눈물이 엎친 데 덮친 격입니다.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_이승하,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 문학사상사, 2005>>


질질 짜고는 강연 마치고 "교수님, 질문 있습니다."를 외쳤죠.

"전 '시'도, '소설'도 잘 안 읽었던 사람이었어요. 이 책을 보면서 시에 빠지게 되었고요. 낭독까지 하게 되었는데요. 시가 좋아 시집을 덜컥 사버리면 혼자 해석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어떻게 접근하면 좋은지 팁을 주시죠."


정재찬 교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통상 시, 하면 다들 손을 절래절래 흔들곤 하지요. 제가 바라는 독자입니다. 제가 전도사가 되었으니깐요. 처음부터 시를 해석할라고 들면 당연히 안 되죠. 좋은 시 모아놓고 풀어 쓴 책을 읽다가 나와 맞는 시, 여러번 겹치는 시인이 나오면 그때 시집을 사보세요. 눈이 길러져 점차 확장될 겁니다."


※ 자식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하여 '자식' 시를 검색하진 않습니다. 책에서 삶과 관련된 '배추 겉절이' 시를 선택한 것처럼. TV 방송 주제가 '테러'라고 해서 '테러' 시가 있겠습니까. 과정을 읽고 삶과 연결짓는...


엄마에 이어 중3 아이에게도 고백하게 됩니다.

"정재찬 교수님은 아들이 중2일 때 가슴이 숯검댕이가 되었대. 결국 삶은 호르몬임을 깨달았다는 거야. 엄마가 사춘기라 네 속이 숯검댕이인 건 아니지?"


과묵한 아들이 입을 엽니다.

"엄마, 마음에 특별히 쌓일 게 없어 할 말이 줄어든 거야."


내 눈이 흘린 물은 복이 고이고, 고여 넘친 물이었습니다.

물 만난 고기처럼 이리 멋진 자리를 마련해 준 <책발전소 위례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서점 입구에 부모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도 쓸 수 있게 해 주신 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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