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가 없던 시대, 동굴 벽에다 뭔가 그려 놓은 걸 보면 인간은 끼적이는데 흥미를 가진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한 성격과 여럿 손 타는 회사 보고서에 짓눌려 쓰는 일엔 흥미가 없었다. 인간 본능을 저버리고 내 본능에 충실했다. 말로 때우거나 메모를 선호했다. 패스트푸드로 끼니 때우던 습관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글자를 치렁치렁 늘어뜨리는 일은 시간 허비로 치부했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글쓰기도 함께 졸업했다. 꼬박 30년을 감금시켰다. 아버지의 18번 노래인 ‘잃어버린 30년’ 꼴이다.
3년 전 아이와 함께 독서모임과 부모자녀세미나를 다니면서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참여 못한 사람을 독자층으로 한 후기였다. 1년이 지나 서평도 적어 보았다. 손 하나 까딱 않던 시절 보단 나은데 어째 남 이야기만 하는 느낌이다. 남 이야기 으뜸이 회사 보고서다. 조직 방향성이 편집자인 글쓰기다. 나의 바깥 이야기에서 안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글쓰기 평수를 조금씩 넓혀 나갔다. 확장공사를 하다 보니 좀 더 깊이 파는 용기도 생겼다. 현장에 오지 못한 이들을 위해 썼던 글쓰기는, 마음속에 가지 못한 나를 위한 글쓰기가 되었다. 일기 쓰던 초등학생을 소환시켰다.
‘고수의 질문법’ 저자특강에서 한근태 작가님을 만났다. 작가님과 대화 할 기회가 있었다. 강연 때 듣던 고수의 질문이 나를 향했다. 최면 걸린 사람마냥 내 입은 쉴 새 없었다. 사람은 자신 이야기를 할 때 쵸컬릿 먹을 때와 유사한 쾌감을 느낀다더만 이야기보따리를 여럿 풀었다. 한근태 작가님은 말을 글로 치환하면 그게 책이라 했다. 독서도 이제 걸음마인데 책 쓰기라니. 질문만 고수는 아니겠지, 사람 보는 눈도 고수이겠거니 생각했다.
업무를 위해서는 전문서적까지 뒤적이면서 ‘나’를 분해할 생각은 왜 못했을까. ‘나’라는 서적은 왜 검색조차 하지 않았을까. ‘나’에 대한 전문가는 내가 유일하고 그 전문서적 저자가 ‘나’일 수밖에 없는 것을. 신나게 말한 이야기를 종이에 스캔 뜨기 시작했다. 집도 회사도 끼어들지 못하는 새벽 4시 반에 글쓰기 공장을 가동시켰다. 노트북의 A4 화면, 바나나 향, 이루마의 피아노 소리가 눈코입을 화들짝 깨웠다. 알람이자 글쓰기 도구였다. 3개월간 매일 썼다. 초보자라 그런지 한 꼭지 쓰는데 4시간이 걸렸다. A4가 채워질 때마다 내 속은 비워졌다. 어느새 ‘나’ 해부학 책 한권이 되었다.
글쓰기 속성이 다단계인지 양질 전환인지, 다른 효과까지 불러왔다. 회사에서 경영실적보고서작성팀에 파견근무를 한 적이 있었다. 경영실사 받던 날, 평가위원으로부터 보고서 작성 부분을 칭찬받았다. 중학생 아이와 ‘가족봉사단’으로 봉사활동을 함께 했다. 30개교 선생님들이 내 소감문을 뽑아주어 연말 해단식에서 발표하는 기회를 얻었다. 또, 학교정보 앱 ‘클래스팅’에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창작대회를 열었는데 수필부문에서 입상해 상품권을 받았다. 글쓰기는 업무와 육아에 효율성을 높였다. 글쓰기는 결코 시간을 좀먹는 하마가 아니었다.
크기가 작든 크든, 앉아있든 걸어가든, 매일 글을 쓰고 있다. 눈앞에 닥친 일만 보던 나였다. 두 눈이 이제 발 따라 스쳐지나가는 것도 본다. 자연의 움직임, 거리 광고, 동물의 흔적, 사람들 표정 하나 하나가 보인다. 먹잇감을 찾아 나서는 하이에나처럼 모두가 글 밥이다. 그동안 눈을 어디다 두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시력이 회춘한다. 눈이 물어온 정보는 가슴으로 전달된다. 가슴은 종이에 내려놓기를 한다. 이런 게 비우는 삶인가. 글쓰기는 몸의 일부, 삶의 일부가 되었다. 잡초처럼 무성했던 잡념이 끼어들기엔 이제 자리가 비좁다.
침대는 과학이라는데 글쓰기는 수학인가. 생각 더하기를 하고 있으니. 아니, 음악과 체육이기도 하다. 글이 리듬을 타질 않나, 꼬리잡기 게임을 하질 않나. 삶의 불청객인 ‘부정적 사고’도 꼬리를 끊어 준다. 글쓰기는 성질머리 뜯어고치는 특효약이다. 성격이 개조되니 표정도 바뀐다. 회사에서 표정 좋아졌단 말을 (이제) 듣는다. 18년 다닐 만하다. 출근길 전철역에서 “표정이 참 좋습니다.”라며 국회의원에게까지 들었다. 이보다 효과적인 성형수술이 있을까. 이리 흥 나는 무반주가 있을까. 이렇게나 저렴한 ‘맨손’체조가 있을까. 돈을 몇 푼이나 아낀 건지 모르겠다. 난 걱정을 사서 하는 편이었다. 글을 쓰면서 책을 사면 샀지, 걱정 사는 일엔 과소비가 줄었다.
글쓰기 세포는 분열을 일으킨다. 번식력도 강하다. 고등학교 때 체육부장, 오락부장을 역임한 바와 같이 발발이가 엉덩이 힘까지 길렀다. 다른 일에도 인내심이 발휘된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글쓰기와 달리기를 같이 하고 있다. 글쓰기와 운동은 세트 메뉴다. 본 메뉴, 사이드 메뉴 할 것 없이 글쓰기와 운동은 포크와 나이프를 든 양식 그 자체다. 습관으로 둘은 나란히 걷는다.
30년간 식물인간 상태였다. 이제야 동굴벽화 본능을 되찾았다. 글쓰기 본능이 나의 동물 욕구를 다독인다.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성격도 표정도 아직 보수공사 할 곳은 많다. 글은 공표의 힘이 강하다. 글로 표현되는 순간 삶의 책임을 부여 받는다. 갈 길이 아득히 멀다. 죽을 때까지 펜을 쥐어야 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