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닌 나, 함께여서 가능한 독서

- 힘이 들 땐 책장을 봐,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야 -

by 푸시퀸 이지

그 옛날 사람들은 글을 읽고 싶어도 먹고 사는데 치여 종이 쪼가리 만지기도 어려웠다. 학생인지 농사꾼인지 헷갈릴 정도다. 글을 쓰거나 읽는 행위는 대부분 역사 속 지하세계에서 이루어졌다. 내가 자란 환경은 문 밖에 놓인 자연처럼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책이 자리했다. 책도, 도서관도 풍년인 세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흔까지 읽은 책이라곤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몇 권 읽었는지 기억하기도 쉽게 10대 한 권, 20대에 한 권이다. 먹고 살기 힘들어 독서를 못한 게 아니라 엉덩이를 진득하니 의자에 붙이는 게 힘들어서다. 그 흔한 ‘어린왕자’나 ‘데미안’은 모르면 간첩 행세를 하더니 그 흔한 드라마나 가요에는 강자로 군림했다. ‘불혹’이란 이름을 기다렸다는 듯이 마흔 이후 책을 손에 넣기 시작했다. 학생이라서, 직장인이라서 책을 멀리한 건 핑계였다.

야근과 휴일근무로 몸은 뻐근하고 정신은 후줄근할 때 ‘1인기업 CEO’ 과정을 들었다. 과정 중 김형환 교수님(중국전략경영아카데미 대표)과 상담 할 일이 있었다. 일과 삶, 몸과 마음이 바닥으로 치달아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틱 장애와 비만, 대인기피까지 있는 아이도 얹어 2인분 상담을 했다. 아이와 함께 독서모임에 나가는 게 처방전이었다. ‘독서’와 ‘모임’이란 단어가 나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하필이면 여태 멀리했던 단어들이다.


상담 받고 돌아오는 주말에 아이와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마흔 한 살 아주머니와 열세 살 학생은 일요일 아침마다 경기도 땅을 벗어나 서울 도심지로 여행을 떠났다. 각자 책을 고르고 각자의 방식대로 읽고는 모임에 나가 무작위 조에 소속되었다. 각자의 생각과 언어가 무엇인지 모른 채. 새로운 사람과 장소를 꺼려하던 아이가 집 밖으로 발을 디딘 것,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가 덕지덕지했다. 그 ‘감지덕지’는 아이만의 독서법을 선사했다. 나야 망신을 덜 당하는 독서법에 무게가 실렸지만.


코로나가 이제 우리들 공간을 만들어 주었으면...



모인 숫자가 약 80명이라 4-5명으로 조를 구성했다. 조별 리더 중 몇 명은 앞에 나가 조에서 나눈 이야기를 발표했다. 두 번째 나간 모임에서 같은 조의 베테랑 회원들이 일정이 있어 먼저 간다고 했다. 어떨 결에 리더가 되었다. 조별 나눔 후 앞에 나가 발표할 차례, 베테랑 회원은 눈치도 없이 어떨 결에 리더가 된 나를 지목하고 자리를 떴다. 소리 없이 사라져도 될 것을 독서를 이제 시작한 사람을 굳이 지목했다.


조에서 나눈 책 내용을 속기록 수준으로 받아 적었으니 그거나 줄줄 읽자 생각했다. 소수정예의 강자로서 발표 울렁증까지 있는데 그날따라 주문 메뉴가 달랐다. ‘앗싸’를 해도 시원찮을 판에 ‘아뿔싸’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독서를 통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발표하란다. 노트에 빼곡히 들어앉은 글자들도 민망한 눈치다. 마이크가 내게 도착했다. “독서모임에 나오려고 금요일 밤마다 마시던 이슬 톡톡 맥주를 끊게 되었습니다.” 입 한번 잘 놀려 그날 이후 ‘불행 끝 행복 시작’ 격인 ‘음주 끝 독서 시작’이 되었다. 누구는 음주 끝이 불행 시작이라 하지만. 모임을 쭉 지켜보니 그렇게 변주곡 같은 주제로 리더 발표 하는 게 그날이 처음이었다.

회사에서 공짜로 받은 책을 들고 나간 나와 달리 아이는 철학, 심리학, 자기계발, 사업 관련 책을 골라 어른들과 나누었다. 아이가 앞에 나가 조원들 책을 소개하거나 같은 조 리더가 아이 이야기를 발표할 땐 한 집 사는 아이가 맞나 의심케 했다. 아이는 내가 발표 할 땐 내용과 시선 처리 등을 점검해 주기도 했다. 나의 귀와 마음에 보청기를 끼웠던 발표내용 하나만 소개한다.


“같은 조에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있는데요. 00책도 읽고, 00이야기를 하더군요. 갑자기 엄마가 누군지 궁금해 물어보니 엄마는 읽고 쓰는 뒷모습을 보여주며 늘 자신의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하더라고요.”


연합나비독서모임 리더 발표 현장, 아이와 나


독서를 하면서 ‘엄친아’는 옆집 아닌 우리 집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친엄마(친구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내가 성장해야 했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던데 난 아이와 3년째 독서모임을 동행하며 세 번 울었다. 비만과 틱 장애를 머금고 사람들과 시선 맞추며 한 자 한 자 내뱉는 아이 모습에 울었다. 운동으로 11kg 감량하고 조원들에게 미리 준비한 내용을 나누는 아이 모습에 울었다. 다른 사람 입을 통해 독서 늦깍이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는 말에 또 울었다. 눈물은 독서모임 지정도서(철학, 자기계발 분야)를 모조리 읽게 했다. 지역 독서모임과 사내 글쓰기 모임의 리더도 되었다.


아이 병 고치려고, 나의 무지함을 감추려고 독서를 시작했다. 이젠 맛있는 음식 먹으면 떠오르는 역할도 한다. 누구와 함께 나눠 먹을까를 고민하며 데일리 데이트 중이다. 마흔 먹도록 책이라 하면, “그대 앞에만 서면 난 왜작아지는가”만 불렀었다. 이젠 책 앞에서 “힘이 들 땐 하늘을 봐,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야”를 흥얼댄다. 100세 시대에 아직 반도 안 채웠는데 마흔 넘어 글밥 먹은 게 뭐 대수라고 하늘 보고 왜 고개를 쳐들지 못했는지.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고작 3년 읽었다고 주저리주저리 읊는다. 30년 독서한 개가 지나가다 웃을 일이다. 분명한 건 함께하는 독서는 어벤저스와 드림팀도 무색할 정도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이다. 그룹 활동을 먼저 해보니 솔로로 나서기도 수월하다. 독서는 기존 지식을 넘어서게 했다. 아이의 세계도, 사람들의 세상도, 그에 반응하는 나만의 영역도.



매월 2회 토요일 아침 7시에 열리는 지역(분당)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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