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아이와 인문학자 멘토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고 싶어 퇴근하자마자 아이 손을 잡고 만원 전철 갈아 타며 부지런히 발을 놀린 적이 있다. 그를 소개받은 것도 따끈따끈한 소식이었지만, 대전이 연고지라 서울 일정 마치고 다음날 내려간다는 뜨끈뜨끈한 소식이 발을 부추겼다.
커피숍에서 두 남자가 미팅하는 동안 난 옆에서 음료수를 쪽쪽 빨아대고 있었다. 치고 빠지는 것마냥 침묵이 흐를 때 옆에서 양념치며 끼어들었다. 아이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심정에서 질문을 쏟았다(인문학 책을 거들떠 보지 않은 애미인지라). 나와 아이의 이야기를 듣더니만 그는 <생각의 탄생> 책이 잘 어울린다며 적극 추천했다.
그날의 추억과 현재의 행동이 엉겨 붙었다. 꼬리잡기 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출근도 해야겠고 꼬리도 자를 겸, < 나의 생각도구 > 한 잔에,
<생각의 탄생> 한 조각, 아이와 주고 받는 <A=B다> 놀이 한 조각, 아버지와 주고 받는 '사진 연상' 한 조각, 필사적 손짓 '필사 운동' 한 조각으로 향을 피운다.
< 나의 생각 도구 >
난, '운동'을 '근육의 움직임'이라 말한다.
난, 식사 시간도 운동 시간이다.
혀와 내장들이 이어달리기를 한다.
시각 -> 후각 -> 미각 -> 촉각 -> 소화기관들이
진동 바통을 주고 받는다.
난, 필사도 운동 시간이다.
감각은 문장 수용체로 바삐 움직인다.
기억은 이미지화 하는 손가락 몸짓이다.
난, 계절이 아닌 바람을 탄다.
바람이 얼굴과 손에 신호를 주면
자고 있던 생각도 리듬을 탄다.
난, 몸이 이해한대로 세상을 바라본다.
몸상태는 감정상태고 생각상태다.
몸은 세상을 해석하는 도구이다.
<생각의 탄생, 도구7 몸으로 생각하기> 217p~220p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에 의하면 "지속적인, 그러나 무의식적인 감각의 흐름이 우리 몸의 동작부위에서 나온다"라고 한다. 이 감각의 흐름이란 우리가 '제6감' 혹은 '비밀의 감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모짜르트는 공공연히 손과 입을 움직이며 곡을 썼다고 한다. 생각하고 창조하기 위해 근육의 움직임과 긴장, 촉감 등이 불려나오는 순간이 바로 '몸의 상상력'이 작동하는 때다.
헬렌켈러는 피아노 위에 손을 얹고 진동을 느끼면서 음악을 '듣곤' 했다. 그녀는 또한 발로 마루판의 진동을 느끼고, 얼굴과 손으로는 공기의 움직임을 느끼면서 무용수들의 춤을 '보곤' 했다.
안무가 엘리어트 펠드는 이렇게 말한다. "몸으로 안무를 해야지 마음으로 하지는 못한다."
가드너는 "몸은 자신의 지성을 품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프레더릭 바틀깃 같은 심리학자들이 주장한 대로 기능적 몸놀림과 생각하기가 유사하다는 것을 거듭 말하고 있다. 심리학자인 베라존스타이너 역시 몸을 '사고의 도구'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