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골과 이골 사이 -
어제 퇴근길에 자주 가던 식당을 들렀다. 단골 식당에 메뉴까지 단골이라 늘 시키던대로 주문하고는 자리를 잡았다. 우등생답게 계산대 바로 코앞에 앉았다. 내 귀에 겹겹이 꽂히는 사장님의 후렴구가 있었다.
"영수증 필요하세요?"
워낙 장사가 잘 되는 집이라 손님이 줄을 이었다. 난 그들 앞에 선 자로서 ‘영수증 필요 여부’ 음악을 계속 듣는다. 자리에 앉은 순간부터 자리를 뜰 때까지 메기고 받는 장단이 반복된다. ‘영감, 왜 불러~’도 아닌 ‘영수증? 아니’ 장단.
영수증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모두가 한 마음이었다. 답의 유형만 다를 뿐. 나처럼 "아니오"와 "영수증은 버려 주세요"다. 매번 같은 질문을 하는 사장님은 힘들지도 않나. OX 또는 주관식으로 답하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눈 앞에 놓인 음식을 씹다 보니 내 모습도 씹힌다. 번지수 잘못 찾은 민원인과의 통화가 생각났다. 전화를 잘못 걸었다는 직감이 올 때 자주 하던 말, "두 번 말씀 하실까봐 드리는 말씀인데요. 그 업무는..." 엄마 이야기를 듣다가도 "지난 번에도 그 얘기 했었는데..."였다.
퇴고할 때도 내용보단 반복된 말에 수사반장 노릇 했다. 독자들은 '뭣이 중헌디'를 중얼거릴 텐데. 가만 보아하니 사장님과 민원인, 엄마 목이 아플까봐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반복학습에 내 귀가 아플까봐 선수친 거였다.
그들이 왜 반복할 수밖에 없었는지 들여다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입 밖에 나온 것만 봤지, 입 속까지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식당에 무인단말기(키오스크)를 설치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영수증 발행 여부를 묻는 키오스크. 같은 말 길어지기 전에 말허리는 어디서 자를까.
이면은 고사하고 이런 생각이나 하고 앉았으니. 순간 고추장을 얼굴에 비빈 느낌이다. 본인 입 속으로 들어가는 메뉴는 단골이라도 처음인양 대하면서. 반복되는 식재료에도 설렐 정도로 맛에 심취하면서.
어쩌면 내가 하는 말들이 어느 누군가는 이골이 날 수도 있는 것을.
어쩌면 나를 환대하던 표정들은 처음인 양 연기한 것 일수도.
어쩌나. 그럼, 난. 뭘 어째. 이렇게 말하면 되지.
"사장님, 00메뉴만 주세요. 영수증까지는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