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시퀸 이지 Jul 30. 2024

인생이 찌그러진 건 아니잖아요

지난 토요일 오전 9시38분.

7시30분에 모이는 독서모임을 마치자 마자 엄마와의 약속을 위해 부리나케 주차장으로 향했다. 엄마가 허리 꼬부려 며칠 동안 깐 마늘을 빻으러 가기 위해서다. 더 꼬부라진 할머니가 시장에서 마늘 빻는 일을 한다. 엄마를 돕는 것도 간만, 차를 운전하는 것도 간만이다. 엄마는 주차장으로 함께 가지 않고 간발의 차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1층 주차장 나가는 길목에 서 있겠단다. 해가 벌써 이리 기승인데 왜 밖에 서서 기다리느냐는 말에 "내 인생 자체가 기다림이여. 얼마든지 할 수 있어"라며 끝끝내 옆 길로 샜다. 

지하2층이 왜 그리 깊게 느껴지는지, 땡볕에서 또 심장 발작이네 발바닥 불 나네 하는 건 아닌지... 엄마생각이 핸들을 잡았다. 엑셀에 힘도 좀 들어갔다. 1층에 다다라 좌회전 해 커브 트는데 어느 순간 내 앞에 차가 있었다. 순간 놀라 브레이크를 밟고는 지나가라며 비켜준답시고 후진 했는데 '퍽'. 1층에 주차시킨 차가 바로 내 뒤에 있었던 것. 

"죄송해요. 많이 놀라셨지요?" 하니

"(나보다 10살은 젊어 보이는 여성이) 아니 빵빵대는데 그 소리도 못 들었어요?"

"(오로지 엄마 생각에) 네, 못 들었어요. 뒤에 차가 있는 줄 몰랐어요. 앞 차 피하려다 그만..."

그 여성 뒤로 줄 지은 차를 보니 내가 피해를 준 것 같아 바로 옆으로 차를 이동시키려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 여성이 창문 밖에 얼굴을 내밀고는


"아니, 지금 이 상황에 어딜 (도망) 가시는 거에요?" 

"뒷 차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피해 드리려고요" 

내가 피해서 주차한들 소용 없었다. 차에서 여성이 나오더니 다들 옆으로 피해 다른 길로 가라고 손짓 했다. 난 여기서 못 움직인다는 표시였다. 그리고는 전화를 했다. 보험회사 인가 했는데 전화 끊기가 무섭게 남편 분이 내려왔다. 사고현장 출동 기사처럼 이 시간에 참 빠르기도 하여라. 남편 분은 날 보자마자

"후진해 부딪치면 100% 그쪽 과실입니다"로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으니 말이 필요없다는 표정이었다.

남편을 본 순간 아이고, 우리 엄마. 땡볕에 더 오래 있게 할 순 없다. 게다가 이 차는 엄마 차다. 건강과 연세 핑계로 공동 명의로 바꿔 놓고는 아이 픽업 할 때 내가 썼다. 주차장 한 복 판에 혼자 서 있던 내가 좀 그랬는지, 사고비 많이 나올까 걱정인 건지, 엄마 팔은 밖으로 안 구부러져 대뜸,

"우리 애는 워낙 배려심이 많은 아이라 갑자기 뛰어든 차를 피해 주려다가 졸지에 본인이 이렇게 당한 거에요. 그 차는 낼름 가 버리고..."

아이고, 안물안궁. 부부 앞에서는 우리 딸이 그렇게 남 생각을 한다, 라고 하시더니 내 앞으로 와서는

"마늘 꾸러미가 하도 무거워 덕 좀 본다 했더니 난 버스 타고 마늘 빻는 팔자인가벼...(나도 대중교통 팔자란 소리?)"  엄마는 마늘 빻는 미션을 차질 없이 수행했다(나 역시 오후 약속 미션을 완수했다). 땍땍거린 게 미안한 건지, 생각해 보니 배려심 있게 보였는지 남편 분이 내게 와서는

"우리 차와는 전혀 관계 없지만 갑자기 뛰어든 차가 가버렸다면 블랙박스 돌려 보세요" 하고 갔다. 15분쯤 기다려 보험회사 직원이 왔고 내 블랙박스를 보려 하니 전원이 뽑혀 있었다. 오래 전 과거로 필름을 돌려 보았다. 집에서 전기세 나올까봐 전원을 뽑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스마트폰 티맵이 있어 차량 네비게이션을 아낀 답시고 뽑은 것.

후진해 들이박은 바보 1

블랙박스 뽑은 바보 2

보험회사에서 상대 차가 외제 차인지 물었다. 타는 문 쪽에 '현대'라고 써 있던 것 같은데 외제차 아니죠?라며 동조 구하듯 대답했다. 중요한 단서 찾은 양 사진 찍어 이름을 불러 주었다. 

"혹시, '엔조이 유어 스타일'이라는 차가 있나요? 뒤에 그렇게 써 있던데요." 하니 보험회사 직원이 일단 알았다고 했다. 오늘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상대 차는 일본 차 00인 거 아시죠? 앞에 한 쪽 범퍼가 나가 8월3일쯤 수리 완료 되고 수리비는 550만원쯤 되요. 지금은 리스 해서 타고 다니십니다" 

바보3이 등장하는 순간. 

"(사진을 확대해 봐도 모르겠던데) 일본차인가요? 제 보험료는 얼마나 오르나요?"보험 관련 담당이 아니라서 알 수가 없다는 걸, 예상치, 경험치라도 말해달라고 졸랐다.  


내 차가 더 찌그러졌는데 자차 수리비는 보험 계약에 없다며 자부담이란다. 엄마는 '종합보험'이면 전부 다 아니냐며 전화로 이 늙은이에게 계약 뭐라뭐라 하면 다 "네네" 하지 뭐가 뭔지 어찌 아느냐며 약 올라 하셨다. 자동차 보험도 이제 눈 떴다. 


걱정할까봐 가족들에게 말 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엄마에겐 딱 걸렸지만. 어렸을 때 내가 넘어져 스타킹에 구멍 나면 다친 것보다 스타킹을 또 사는 게 걱정이던 엄마. 사람 안 다친 것보다 보험료 걱정을 더 할지 모르겠지만 바보가 사람 되는 인생 경험 참 잘 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을 만큼 엄마를 생각하는 나를 발견해서, 진즉 평소에 효도하라는 메시지, 고속도로가 아니라서, 다친 사람 하나 없어서(상대 편은 병원을 간다고 했지만), 자차보험 안 든 걸 발견해서, 앞으로 더 조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마지막에 상대차 여성에게 달려가 


"소중한 주말 시간을 빼앗아서 죄송하게 되었어요.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남은 시간은 편히 보내시기 바랍니다"라고 미련 없이 털은 것도 더욱 다행이다.


분당나비독서모임에서 김창완의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책을 강추 하며 열변을 토하고 왔는데 바로 내 차가 찌그러질 줄은 몰랐다. 


자동차가 찌그러진 거지

내 인생이 찌그러진 건 아니다. 

다른 지출을 더 찌그려뜨리면 될 일.





매거진의 이전글 삶의 단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