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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Aug 05. 2024

그러다 얼굴 까먹겠다

거울도 안 보는 여자

집에서 쉬니 거울 볼 일이 없다. 별 볼 일 없는 인간이 된 것 마냥. 그러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거울과 눈이 마주쳤다. 어라? 코 옆에 이건 뭔가. 하얀색. 자세히 보아야 더 예쁘다는데 그건 꽃만 해당 되는 얘기. 썬크림이었다. 1일 2회 복용하듯 반감기를 고려해 하루에 두 번 바른다(귀찮고 아까워서 빈도를 늘려 떡칠까진 못 하겠다). 세수하고 기초 화장품도 촉각으로만 바른다.

자칭 '고유수용감각'으로 화장하는 여자. ​


독서모임에서 받은 선물


썬크림은 역시 아이스크림과 달랐다. 스며들지 않아 둥둥 떴다. 파운데이션이 아니라고 들뜸에 방심했다. 안그래도 요즘 들어 부쩍 혼잣말이 늘었는데. 코가 아이스크림을 먹은 것 같은 콧잔등 썬크림을 보니 이 말이 툭 튀어 나왔다.


"그러다 얼굴 까먹겠다."​


거울이 하는 소리인데. 마음 속 거울이 하는 소리일까. 존재감과 부담감이 클 때, 책임감이 어깨 뽕을 드리울 땐 혼자 만의 공간이 그리웠다. 거울 볼 일이 없다는 거, 존재감 희석으로 해석한 건 아닌지.


뭐 어때. 코도 뚫는 세상에.

(다음엔 살색 썬크림을 사야겠다)

많이 걷는다고 팔에 바르라고 주신 썬크림,

그 고운 마음만 거울에 비치면 그만.


너의 몸과 맘이 건강하면 그 뿐이다, 라는

상사와 직원들 말이 거울에 비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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