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쉬니 거울 볼 일이 없다. 별 볼 일 없는 인간이 된 것 마냥. 그러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거울과 눈이 마주쳤다. 어라? 코 옆에 이건 뭔가. 하얀색. 자세히 보아야 더 예쁘다는데 그건 꽃만 해당 되는 얘기. 썬크림이었다. 1일 2회 복용하듯 반감기를 고려해 하루에 두 번 바른다(귀찮고 아까워서 빈도를 늘려 떡칠까진 못 하겠다). 세수하고 기초 화장품도 촉각으로만 바른다.
자칭 '고유수용감각'으로 화장하는 여자.
독서모임에서 받은 선물
썬크림은 역시 아이스크림과 달랐다. 스며들지 않아 둥둥 떴다. 파운데이션이 아니라고 들뜸에 방심했다. 안그래도 요즘 들어 부쩍 혼잣말이 늘었는데. 코가 아이스크림을 먹은 것 같은 콧잔등 썬크림을 보니 이 말이 툭 튀어 나왔다.
"그러다 얼굴 까먹겠다."
거울이 하는 소리인데. 마음 속 거울이 하는 소리일까. 존재감과 부담감이 클 때, 책임감이 어깨 뽕을 드리울 땐 혼자 만의 공간이 그리웠다. 거울 볼 일이 없다는 거, 존재감 희석으로 해석한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