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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Jul 27. 2020

줌바댄스 후유증, 리듬앓이

- 아, 어쩌란 말이냐, 흔들린 이 마음을 -

줌바댄스 세계에 진입한 후 마음 좀 다잡고자 지난번 브런치에 초벌구이 글을 떡하니 올렸다. 내가 줌바고, 줌바가 나인 양 ‘호접몽’ 아닌 ‘호줌몽’ 상태로. 글로 쏟아내면 속이 후련할 줄 알았더니 메마른 가슴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지난 금요일도 어김없이 줌바댄스 지정석에 섰다. 강사 코앞 자리. 굴러 들어온 돌의 자리로서 세 번째 수업을 맞았다. 순서 모르고 팔다리를 반대로 휘저으면 강사가 다가와 눈빛과 몸짓으로 교정해주는 상석이다. 그럼 난 손가락 추켜세워 오케이를 한다. 평소 이렇게 다정다감한 사람이 아닌데 내 엄지와 검지도 춤을 춘다. 내 몸이 음악에 안긴다. 줌바댄스가 내게 허락한 50분, 헌데 여운은 주말 내내다. 무슨 미련이 그리 남아서.


지난번에 썼듯이 줌바 뜻도 모르고 좋아라 흔들기만 했다. 그리움을 책으로 달랠까싶어 관련 도서를 검색했다. 온라인 서점에서 달랑 한 권 나온다. 지금 주문해도 내 손 안에 들기까진 뜸 들일 테고,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이 느낌. 도대체 얼마만인 게냐. 서당 개 3년, 신혼 3년에서나 느낄 감정 아니더냐. 다 늙어 요래 다시 올 줄이야. 첫 아기 맞는 엄마마냥 줌바 신생아를 어찌 안아야 할지 모르겠다. 기쁘다 구주 오셨는데 어떻게 맞이해야할지 설렘만 한 가득이다.


올해 영화 한 편 보지 않은 내가, 대리만족으로 줌바댄스 할애비 같은 작품이라도 있을까싶어 눈에 쌍불 켜고 시네마 천국을 헤집었다. ‘넷플릭스’ 라는 데도 가입했다. 댄스 관련 영화를 한데 모았다. 발레, 치어리더, 기타 등등 댄스는 패스, 추리고 추려 후보작 10편을 선정했다. 일요일 오후 시간을 차지한 영화는 <댄싱 마미스>.


영화 엔딩 장면, 아들은 오늘부터 기말고사인데 엄마는 춤을 추니 우린 "맞춤" 모자지간?


영화 소개보단 줌바댄스와의 소개팅이 중하니 줄거리에 의문 품지는 않길 바란다. 승승장구하던 인사부 임원의 첫 등장. 그는 300명 직원 밥줄에 칼을 휘둘러 악명 높은데다 사내에서 큰 실수를 저질러 자신마저 해고된다. 큰 실수 동영상은 화제의 동영상으로 일파만파가 된다. 생모를 만나면서 내가 기다리던 장면들이 펼쳐진다.


엄마는 불명예로 숨어 지내는 아들에게 댄스를 권한다. 자신의 우울증과 자살하려던 택시 기사 사례를 거들먹대면서. 두 케이스 모두 해당하는 아들이기에. 마미스 댄서들은 춤추기 전 이런 말을 한다. 파란만장한 삶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무대에 오른다고. 어떤 사람이 댄스학원에서 '힙합주부단'이라 부르니 학원 관계자는 되받아친다. 여기 주부는 없다고, 학생만 있을 뿐이라고. 이런 말만 귀에 쏙쏙 들어오는 걸 보니 나도 듣기평가 하나는 끝내주는 학생이다.


마미스가 댄스 시작 전에 외치는 구호도 마음에 든다. ‘자부심!’ ‘겁나 섹시하게!’ ‘세계 정복!’이다. 줌바댄스에 대한 연구 결과로도 증명된 ‘자부심’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제아무리 뚱뚱하고 살이 출령거려도 자부심 갖고 겁나 섹시하게 춘다. 엄마는 아들과 함께 오를 댄스 무대를 위해 15년간 일한 호텔에서 청소 하다말고 스텝을 밟기도 하고 상사에게 승진과 휴일근무 이야기도 당당히 주장한다. 이 부분이 와 닿았단 소리는 가끔 스탭으로 검토자료를 보고 줌바댄스 시간에 맞춰 자료가 타들어갈 정도로 눈빛 레이저를 쏘기 때문이다.


엄마는 불명예로 세상에 얼굴이 알려진 아들에게 방송에  출연하게 된 댄스팀에 합류할 것을 권유한다. 사람들이 비웃을 거라는 아들 말에 엄마는 “비웃으라고 해. 감수하고 살아. 자부심, 자부심, 자부심...”하며 자부심 후렴구를 대여섯 번 반복한다. 내 입에서도 이 단어가 줄줄이 사탕 되지 않을까 싶다.


댄싱 마미스는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기다리는 엄마’에서, ‘춤을 추는 엄마’로 재정의 하면서 출발했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뭐니뭐니해도 마지막 장면이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사회자는 아들의 불명예 동영상을 방송에 내보낸다. 그동안 숨어 지내다 왜 이 자리에 나타났느냐며, 그때 실수가 후회스럽지 않느냐며 아들 가슴을 더 후벼 판다.  지그시 바라보는 부모,  당당히 말하는 아들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난 춤을 추러 온 거라고. 그 불미스런 사건보다는 300명 직원 가족들에게 못 박은 일이 가장 후회스럽다고. 인간쓰레기였던 자신을 춤이 살렸다고. 돈과 명예만 쫓던 자신과 달리 그저 춤이 좋아 추는 마미스에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인간이 누리는 기본 권리 아니겠느냐, 이젠 자신이 그들에게 댄스엄마가 되겠노라며 특출 난 춤 실력을 선보인다. 직업, 지역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춤을 추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에서는 어반댄스라고 나오지만 내가 추는 줌바댄스와 음악도 같아 그리움을 잠재우기에 제격이었다.


<가슴앓이>란 노래에서 ‘아, 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이 아픈 가슴을’ 하며 울부짖는 소절이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에게 따지듯이. 곰곰이 생각하니 난 줌바댄스가 첫사랑은 아니었다. 1년 전 출판기념회 영상 보니 한차례 스쳐간 사랑이다. 엄마가 속한 힙합 동아리에서 출판기념회 축하 무대를 준비했다. 음악과 단체에 흥분한 나머지 마미스, 그들 사이에 끼어들고 말았다. 지금 보니 작가 된 기념회가 아닌 댄서로서의 기념회였던 게다.


요즘 ‘나’를 돌아보니 그때 왜 그런 짓을 벌렸는지 이제 좀 알겠다. 인기 프로였던 ‘너의 목소리를 보여줘(너목보)’ 처럼 ‘너의 본모습을 보여줘(너본보)’ 한 컷이었다. 국내 가요만 듣던 내가 라틴, 힙합, 살사, 레게 등 세계화를 접하니 이걸로 세계여행 퉁 친다. 몸이 비행기 노릇했다.


춤은 나도 살리고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살린다. 이 분위기 그대로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살리고살리고, 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살려야 할 게 너무 많은 것이 또 세상 아니던가. 이러다 푸시퀸이 댄싱퀸 되는 건가.   





엄마를 포함해 85세까지 구성된 이 팀은 작년 전국구 대회에서 두세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금년 상반기 땐 한국에어로빅협회 주관 유튜브 대회에서도 1등으로 결선 진출했다. 어떻게든 축하해 주신다며 일주일 연습하고 전철타고 오시는 길에 계단에서 넘어지고 신발굽 날라가고... 미소 속에 그런 내막이...마미스 건강! 자부심!

위원회 개최 장소에서 퇴근 후 이런 일을 벌렸으니 직장과 지인들 동공엔 '황당'렌즈가 삽입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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