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재택근무를 마치고 가족들과 생선구이 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평일은 원주에서 지내는 터라 모처럼의 시간과 모처럼의 메뉴와 만났다. 아버지는 술을 끊었다. 나와 마주한 아버지는 식사와도 만남이 짧았다. 숟가락 들 힘은 쎄 보이는데 드는 빈도가 줄었다. 건강 한 스푼만 뜨는 절제된 모습이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원주를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출퇴근했다. 내가 없는 동안 아버지와 술이 만나 아이들 앞에서 스파크 현상이 벌어질까봐 단 하루도 사택에 몸을 뉘인 적이 없었다.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집이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일이 없을 것만 같았던 것처럼, 아버지 생전에 술을 끊는 일은 신화에 나올 일이라 여겼다. <턴의 미학> 책을 쓰면서도 가장 의식되던 독자는 아버지였다.
그러던 아버지가 술과 결별을 선언하고 3주가 흘렀다. 슬쩍 떠보기라도 하는 양 “아버지 면역 높이려고 일부러 생선구이 집에 왔으니 막걸리 한 잔 안하시겠느냐” 하니 지금 장난하느냐는 눈빛으로 딱 자른다. 내 눈빛도 겉으론 서운함이지만 속으론 반달이었다. 아니, 축배를 들어야 될 판이었다.
아버지에게 꿈이 생겼다. 그 꿈이 천지개벽 같은 ‘금주(禁酒)’ 까지 부르니 아이고 어른이고 꿈엔 당할 장사가 없나보다. 나와 함께 출판기념회를 여는 게 꿈이란다. 술 궁뎅이가 컸는지 술이 빠진 자리에 들어앉은 게 꽤 된다. 아버지의 절뚝대던 다리는 매일 2시간씩 걷는데 쓰고, 왕년에 철판 자르던 손은 악력 운동에 쓰고, 남은 힘은 중국어 쓰는데 보탠다.
그런 아버지 덕에 이젠 원주를 매일 출퇴근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날 자유부인으로 허락했듯이 아버지도 가슴에 한 권의 카네이션 달고 자유인이 되리라 믿는다. 내가 잘나 지금 이 많은 걸 누리고 산다고, 이 상황을 공기처럼 여길까봐 생선구이가 뱃속에서 김 모락거릴 때 부리나케 손을 놀린다.
현복이의 일기가 유독 생각난다. 나의 초등 일기에 등장한 아버지도 불러 본다. 두 일기의 질적 차이는 확연하지만 이 땅의 아버지를 위한다는 한 마음 한 뜻으로 결의를 다져본다. 이제 우리 살만하니 건강 꽉 붙들어 매소!
< 현복이의 일기 > - 아버지 (13-14p)
11월 20일 (수), 맑다가 흐려짐.
저녁 9시가 한참 넘고 이제 곧 밤 10시로 접어들 때였다. 한없이 움직이는 괘종시계를 보시고 어머니는 근심스러워하셨다.
"너희 아버지, 왜 이렇게 안 오냐? 또 술타령이나 하는 모양이다."
이제 2시간 전에 오셨어야 할 아버지께서는 밤이 깊도록 공사장에서 돌아오시지를 않으시는 것이었다. 이렇게 안 오시는 것을 보면 어머니 말씀대로 도중에 어느 술집에 들러서 술에 취하셔서 집에 돌아오실 모양이다. 그러나 난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특히, 아버지가 잔뜩 술에 취하셔서 집에 들어오신 모습을 생각할 때 나는 더더욱 생각하기 싫어지는 것이다. 술에 취해 소래를 괙괙 지르시는 아버지의 붉은 색 얼굴은 나를 소름 끼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난 공사장에서 오늘 밀린 일이 많은 사정으로 아직 집에 오시지 않는 걸로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 아버지는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들어오시고야 말았다.
"아버지, 술 취했다."
술에 취해 들어오시면 늘상 하시던 말씀을 나의 인사의 대답 대신 하셨다. 이 때 아버지께 얼마나 격분을 느꼈는지. 왈칵 쏟아지는 격분을 입술을 깨물며 참아 내었다. 나는 그렇게 짓궂은 아버지가 싫은 것이다.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는 돌아오신 대로 술에 취한 실수를 자주 범하셨다.
'아버지, 도대체 그 술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많이 잡수시고 어머니와 나의 마음을 왜 근심스럽게 만드시나요. 술에 대한 미련을 끊으시고 새 아버지로 나한테 모습을 바꾸어 주시면 안 되겠어요.;
나는 아버지께 혼자 이렇게 호소하는 것이다.
< 푸시퀸 이지의 일기 >
1988년 5월 8일 일요일
엄마가 어제 대구에 가셨다.
대구에 가셨다가 부산에 가신다.
아침은 밥을 먹고 점심에는 약수터에 가서 라면 끓여먹자고 아빠가 그러셨다.
아침밥은 다 먹었다.
그래서 약수터에 갈 준비를 하였다. 라면 세 개, 과자류, 버너, 코펠 등을 가지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