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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Mar 21. 2022

가지 많은 ‘세상’에 바람 잘 날 ‘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슬로건은 ‘국민건강'. 얼어죽을, 내 건강이 죽 쑤는데 누가 누굴 챙겨. 내 몸 하나 간수 못하면서 ‘국민건강’이 가치인 회사에 몸 담을 자격이 있나. 나름 나이팅게일이었던 전직 간호사인 내가 건강보험 수가를 만들고 전산시스템과 뉴미디어 콘텐츠를 개발하고 기관의 미래전략 기획부터 경영평가보고서 등 일을 하려다보니 회사에 때려붓는 시간은 많아지고 백의의 천사 날개는 후줄근해질 수밖에. 강산이 한번 변할 때쯤 내 몸도 좀비처럼 멍들어갔다.      


10대 때는 종합병원이었다. 20대는 돈 버는 기계로, 30대는 내 자식, 오빠 자식 키우는 게 현안이었다. 40대는 우여곡절 몸인 어머니를 관찰 중이다. 하나에 꽂히면 둘 셋은 못 보는 성향이었다. 하나를 끝내야 둘을 시작하는 사람. 신은 나를 멀티플레이어로 키우고 싶었나보다. 애들도 혼자 키우게 하고, 다섯 식구 먹여 살리게 하며, 회사 일들은 거절 못하게 만들었으니.


내 몸값은 나이의 2-3배 껑충 뛴 60대였다(현재는 건강검진 심혈관계 38세). 그 사이 아이들도 병들게 했다. 틱장애, 비만, 측만, 양성종양 등등. 내 몹쓸 몸뚱이를 저주하며 회사일 그르칠까 싶어 조용히 떠날 생각도 했다. 결국 돈이 발목 잡았지만. 전신의 염증, 통증과 동거할 땐 자존감은 하락세, 원망감은 상승세로 치솟았다. 다 잃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다른 문제들은 고사하고 내 몸부터 일으키자. 몸이 서니 잃은 게 아니고 가진 게 너무 많은 거였다. 가족과 회사, 염증과 통증이 나를 움직였다. 애증 관계이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검은별 관계.     


야식, 간식의 끝판왕이었던 나. 업무보다는 '술' 역량으로 손에 꼽히는 랭킹 인물이었다. 몸이 골골댈 땐 허기 질 때마다 배가 울부짖기도 전에 입을 놀렸다. 구강기 때 엄마의 직무유기로 이 모양인가, 하면서 먹어댔다. '꼬르륵'은 마음이 내는 소리였거늘. 지금 12시간 공복과도 친한 걸 보니 아기때 징그럽게도 안 움직인 모양이다. 이젠 파블로프의 종소리처럼 몸이 내는 소리에 음식을 들인다.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으려 한다. 내뱉는 데 있어서도. 말 없는 발이 천리 가도록.


5년간 ‘나’를 실험했다. 몸, 건강, 음식, 운동, 삶과 관련된 책으로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며 내 몸을 연구했다.  운동 유전자를 타고나진 않았다. 운동 금수저를 쥔 것도 아니다. 동물로 태어난 이상, 움직임이 본질인 이상, 세상에 살아있는 이상, 만물의 영장답게 여생을 채우고자 운동에 투자했다. 마음이 어쨌든, 주머니 사정이 어떻든, 일거리가 얼마이든 간에 운동과 함께 했다. 투자 원가는 뽕을 뽑는, 이토록 남는 장사가 없다. 외형, 건강, 일, 시간, 습관, 돈, 삶, 관계...이상모두 체크(V)   


우리 몸에 물이 60~70%에 달하는 건 흐르는 물처럼 자유로이 몸을 움직이라는 의미다. '자유로운 영혼' 유전자로 태어나 '영혼만 자유'라면 몸에서 탈 난다. 삶 리듬에 맞춰 내 몸을 움직이면 몸-마음-영혼이 일치한다. 가정-회사-일상도 삼위일체 된다. 움직임이 멈추면 엇박 난다. 일상 소리에 몸이 박자 맞춘다. 진정한 '비트 코인' 소유자다.   


몸에 '근육' 금붙이를 걸쳤다. 승부를 가늠할 수 없는 인생 올림픽에서 '성장호르몬'을 도핑 중이다. 단백질 합성은 돕고 지방은 분해하는, 중요한 일은 합성 하고 해로운 일은 분해 하는, 어제보다, 전보다 나은 성장호르몬으로 남은 돕고 나를 분해하려 한다.  


나이가 많다고, 일이 많다고, 몸 둘 바 모르는 몸으로 살라는 법은 없다. 세상이 내려준 처방전에 움직임을 복용한다. 가족, 회사, 나와 마주친 인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몸 글 쓰면서 몸소 깨달음! 이젠 입도, 몸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난 소중하니까~" 그 바람에 다른 사람 몸까지 소중해진다. 거친 세상에 잔잔하고 따스한 바람이 내 몸에 분다. 후~


공공기관.     


‘공공의 적’이었던 몸. 또 한 차례 강산이 바뀌고 내 몸은 유턴했다. 아니, 더 강력한 제복으로 갈아 입었다. 나에게 반(反)했던 몸이, 내가 반하는 몸이 되었다. 홀린 기분에 또 건강해진다. 몸이 변한 후 일과 삶의 토끼 귀 한쪽씩 잡아 두 마리 모두 손에 쥘 수 있음을 알았다. 병 주고 약 준 회사지만, 약 주고 병 준 게 아니라서 고맙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년차. ‘국민건강’을 위해 ‘건강’을 ‘보험’삼아 나를 ‘심사’하고 ‘평가’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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