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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시퀸 이지 Mar 21. 2022

부(富)작용

개인트레이닝(PT), 하면 뭘 배울지 보다 돈부터 떠올렸다. 1회 비용(5만원~7만원)을 본 순간 머릿속에서 실랑이를 한다. 지금 당장 이 돈을 들인 만큼 떡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여태 이거 없이도 살아왔는데 굳이 지갑 열어 생돈 날릴 일 있나 등등. 가족들 살림살이나 경조사엔 우직하게 돈 쓰면서 ‘남’ 너머 ‘나’에겐 지갑보다 입부터 떡 벌어졌다. PT를 하기까지 결혼상대 구하는 것만큼 재기도 많이 쟀다. 돈의 흐름이 눈에 보이면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생길 텐데. 결국 질병에 등 떠밀려 관계는 성사됐다.


중년까지 월급쟁이 생활로 손에 잡히는 경제만 신경 썼다. 유형(有形)에만 급급했다. 요즘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강연이나 독서 등 자기개발에 투자하는 분위기다. 무형(無形) 자산에도 서슴없이 비용을 치른다. 같은 무형 문화재인데 몸 투자에는 좀 야박한 면이 있다. 왜 머리는 재개발이고 몸은 투기 지역이 될까. 쏟아부은 독서가 제아무리 내로라한 영양제라도 내 체질과 맞지 않는다면 방부제에 불과하다.


시간 없다 소리들을 해서 그런지 온라인상에는 운동 콘텐츠가 갈수록 넘친다(코로나 바이러스도 한몫 했지만). 손가락과 몸만 클릭하면 되는 세상이다. 굳이 물리적, 인적 자원에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온라인 운동밥상은 진수성찬이다. 난 온라인 쇼핑을 즐기지 않는다. 손 보다 발로 지불하는 성향인데다, 섣불리 동작을 따라했다간 병만 더 키울 소지가 크다. PT 비용 아끼려다 병원비가 더 나갈 판. 운동을 다 늙어 시작한 탓에 운동 이름도, 운동 기구도 신생아 수준이고 이해력도 남다르게 딸린다. 이런 핸디캡은 '영상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날 알면 얼마나 안다고'로 붙똥 튀었다.


학습이란 모름지기 면(面) 대 면(面)으로 이루어져야 효과가 높다. 운동이 특히 그렇다. 면(面) 사이에 화면이 끼면 초보자 면도 안 선다. 비용과 시간을 충분히 우려낸 양자협상이 있어야 의지력도 발끈해 활력을 되찾는다. 내 몸 구석구석을 살피는 건 여행과도 같다. 여행은 미지의 곳을 오랜 시간 들여 둘러볼 것이냐, 맞춤형 가이드에 따라 전략적으로 볼 것이냐, 의 갈림길이다. 난 후자를 택했다. 운동 첫 경험의 수치심도 감추고, 나만의 질문으로 피드백도 가능해 내 몸은 PT를 택했다. 진료실에서 의사와 마주하나, 휘트니스센터에서 트레이너와 마주하나, 수고로움은 매한가지다. 휘트니스센터와 PT로 학습의 장을 열고 운동 입문 과정에 발을 들였다.


당장 운동으로 빠져나간 돈은 근육으로 불어났다. 은행 통장보다 내 몸을 더 자주 봐서 그런지 스스로가 부유층이라 여겨졌다. 저금리 시대에 이보다 높은 이율이 또 있을까. 도난 당할 일도 없거니와 실제로 허리근육도 강해져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게 됐다. 머리로 열심히 일할 땐 잠들기가 그리 어렵더니만 열일한 근육은 침대에 닿자마자 곯아떨어진다. 운동하기 전엔 누우면 깨고 일어나서는 조는 생활이었다. 밤낮이 거꾸로 된 신생아. 배고파도 못 자고, 잡념으로도 못 자는 ‘불면(不眠)’ 신생아.


풍선의 한 쪽을 누르면 다른 한 쪽이 밀려 나온다. 이를 ‘풍선효과’라 하는데 이는 주머니 속사정에도 적용된다. 쑥 들어간 PT 비용으로 인해 다른 지출이 떠밀려 나왔다. 지출이란 단지 오고가는 금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일이 벌어지기까지의 고민, 준비, 발품과 뒷수습, 관계, 시간 등등 모두를 아우른다. 아웃 대상은 다음과 같다.


< 운동 후 아웃 대상 >


1. 자체 보상 수여식 : 금요일 밤 맥주와 안주거리, '나혼자 산다' 시청

2. 가리개 용품 쇼핑: 뱃살 가리개 의류와 여드름 가리개 화장품 쇼핑

3. 눈 부릅 용  커피 : 피곤 신경안정제용 아침, 점심 5천원/day 커피   

4. 거절사절 술자리: 자칭 분위기메이커로 상사/직원간의 역할 자처

5. 정보회포 술자리: 모르면 간첩, 되로 주고 ‘말’로 받는 미풍양속

6. 외식 야식 폭식: 일거수일투족 가족외식, 수면제 야식에 의무와 책임


운동 하면서 '부(富)'의 개념이 돌변했다. 투기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몸’의 실소유자가 되었다. 삶도 재테크 관점에서 바라본다. '부(富)'작용이 클수록 아웃 지출과 건강 잔액이 느는 경제원리다. 나야 이제 부자가 되었지만 '몸' 부동산에 일찌감치 투자하는 이들은 많다. 진즉에 '근육 적금’ 차곡차곡 부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만큼 또 소비했을 것이다. 아무렴 어떠랴. '힘든 타자'에게 귓속말이 되었든 ‘과거의 나’에게 혼잣말이 되었든 운동으로 부가가치가 오른 건 분명한 사실인데.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시대에 건강은 물론 개인의 성장이 화두다. '업글 인간', '헬시 플레져'란 용어까지 등장한 만큼 운동이 트랜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아프다 소리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아픔은 내게도, 가족과 이웃에게도 빚이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 마이너스 통장 되기 전에 모두가 힘을 보태야 한다.


몸에서 벌어지는 빈부 격차, 그 해소를 위해 난 얼마나 뛰고 있는지, 세상 아우성에 난 얼마만큼의 포인트를 기부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왔다. 사십 평생 명품을 몸에 둘러 본 적 없고, 여생에도 그럴 일은 희박하니 몸이라도 명품으로 치장하련다. 심신(心身) 명품에 투자해 부국강병(富國强兵) 이뤄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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