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31) 지구 궤도에 사소하게 서는 날

나는 없었다

by 이주형

지구 궤도에 사소하게 서는 날

- 나는 없었다 -


지구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하는 일을


라디오 아나운서가


삶의 주파수를 잃어버린

제 감정 궤도 위에 올린

어느 날이었습니


주파수를 찾지 못한 마음에는

늘 잡음뿐이었습니다

잡음에는 들풀조차 뿌리의 방향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런 마음에는 사람이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하는 일을 생각할

시간은 사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소한 일이라고

얼버무렸습니다


마음이 송두리째 무너진 날

그 사소한 일들이 몹시도 그리워지는 날

당신은 저를 지구 궤도 위에 올리셨습니다


태양이 채색하는 풍경화를

삶으로 가득 찬 길을

그 길을 따라 일어서는 숨을

그 숨으로 봄을 마중하는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소함을 소중함으로 읽을 수 있는

나무보다 더 푸른 숨을 나눠주신

당신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삶이 그리는 궤적 어디에도

저는 없었습니다 지워진 역사처럼

한 사내가 짓밟힌 감정을 주우며

시간 뒤로 뒷걸음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