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重力)을 생각한다. 지구가 끌어당기는 힘. 우리가 공중에 뜨지 않고 지구에 발붙이며 살 수 있는 힘.
나에게 중력은 학교였다. 내 모든 중심에는 학교가 있었다. 학교는 내가 지구에, 사람에, 시간에, 삶에 발붙이고 살 수 있도록 나를 단단히 끌어당겼다.
그런데 그 중력이 사라지고 있다.
"이 선생, 계시는가?"
나는 신발도 신지 않고 거의 반사적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
"선생님!"
하지만 그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선생이 하도 바쁜 것 같아서 내가 왔네. 잠시 이야기할 시간 되시나!"
작년부터 몽골 사막화 방지 숲 조성 교육 활동에 누구보다 큰 관심과 지원을 해주시는 마을 어르신이 직접 학교로 오셨다.
앉으시라고 자리를 권했지만, 어르신은 선채로 말씀하였다.
"아니, 연락도 없고 어떻게 된 거야? 어디 편찮으시나?"
내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죄송합니다"가 고작이었다.
"아니, 그 말을 들으러 온 건 아니고, 교육청과 협의를 하는 사람이 계속 어떻게 되어 가느냐고 물어봐서. 내가 무슨 이야기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아니래도 어제 개인적인 자리에서 교육청 관계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계획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나 해서. 몽골 나무 심기는 그린피스 활동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는데……."
마을 어르신은 기업을 경영하는 지인들에게도 사막화 방지 숲 조성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다고 했다. 기업들 또한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기꺼이 함께 하기로 했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사막화 방지 숲 조성 이야기를 듣는 사람 모두가 너무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국가와 기업, 그리고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을 학교가, 또 학생들이 하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워한다는 주변의 반응까지 이야기해 주셨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단체는 자신들이 하는 사업과 연계해서 할 수도 있겠다며 아주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말씀을 들을 때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아니, 그토록 열정적이던 사람이 왜 아무 말이 없어. 무슨 일 있어?"
걱정 가득한 눈빛과 말씀에도 나는 역시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했다.
"……"
학교를 위해 너무도 열심히 도와주시는 팔순을 넘기신 마을 어르신께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속으로 무사히 잘 다녀오기를 바라는 것밖에!
올해는 제가 몽골에 가지 못합니다.
어쩌면 …… "
이라는 말씀을 차마 드릴 수가 없었다.
학교 덕분에 다시 삶의 의미를 되찾으셨다는 마을 어르신, 그것이 너무 고마워서 학교를 위해 뭔가라도 조금 더 해주시려는 그 마음이 꺾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일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 선생, 이 선생이 왜 저러시지?"
옆예 있던 선생님 또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와 마을 어르신 사이에서 시선을 잃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 생각해 보고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하시게!"
나는 말씀을 듣는 내내, 그리고 서운한 마음 가득 안고 돌아가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속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학교(교육)의 기능이란!
학교(교육)의 본질이란!
학교(교육)의 역할이란!
마을 학교란!
교사란!
나란!
선생님이 가시고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가무의식적으로 입에 올려졌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시인의 시와 함께 스크랩해 두었던 글을 찾아 읽었다.
CEO에서 물러나야 할 9가지 신호
[출처] 마크 저커버그, CEO에서 물러나야 하나
(1) 당신은 회사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하였다면
(2) 회사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면
(3) 당신의 회사는 당신이 원래 상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4) 당신은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다면
(5) 정치적인 문제들을 갖고 있다면
(6) 당신은 더 나은 리더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알고 있다면
(7) 당신은 지루하다면
(8) 당신의 방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다면
(9) 회사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일할 시간이 없다면
그리고 그 밑에는 내가 쓴 10번째 항목이 있었다.
(10) 더 이상 회사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최근 나의 말습관 중에서 확실히 고친 게 있다.
"내가 알아서 할게!"
평소 부모님이나, 지인들이 어떤 말을 하면 나는 습관적으로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했다,
이 말을 듣는 사람의 마음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채.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사람이라지만, 이제 나는 이 말이 주는 상처가 너무 잘 보인다. 그래서 죄스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