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장래(將來)식
느낌 일기(마을 학교)
"오늘 마을 학교 선생님 한 분이 못 오신대요."
못 오신다에 강조점을 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유에 더 큰 강조점을 둔 선생님의 이야기다.
"과수원에서 예초 작업을 하시다가 돌이 튀어서 다치셨대요."
예초기를 사용하다가 같은 아픔을 경험한 일이 있기에 마을 학교 선생님의 아픔이 그대로 느껴졌다.
마을 학교 선생님께 바로 전화를 드렸다.
목소리에서 그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아픔보다 수업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더 미안해하셨다.
산다는 게 참 팍팍하다 못해 너무도 퍽퍽한 세상에 마을 학교 선생님들은 분명 오아시스가 되어 주시고 있다. 그 오아시스마저 마르면 안 되기에 선생님을 바로 찾아뵈었다.
선생님께서는 전화에서 말씀하신 것보다 훨씬 많이 다치셨는지 거동조차 어려워하셨다.
선생님은 힘겹게 다친 과정, 그리고 혼자 운전해서 어렵게 병원에 간 과정 등을 이야기해 주셨다. 댁과 이웃해 있으면서 수업 때만 인사드린 것이 너무 죄송했다.
안부를 여쭈고 나오는데 현관까지 나오셔서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주셨다.
인사 끝에 빨리 나아서 다음 주에는 학교에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서 학교 교사들보다 훨씬 강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의 배웅을 뒤로하고 나오면서 더 빨리 찾아뵙지 못한 것이 못내 죄송했다.
마을 학교를 한답시고 많은 홍보를 하고 있지만, 그래서 많은 학교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학교로 찾아오고 있지만, 정말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마을 학교를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생각이다.
"마을은 국가의 기본 단위일 뿐만 아니라, 교육의 가장 큰 장소이자 기본 장소이며, 발전 장소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생각했던 의미가 진짜 많이 퇴색하고 있음을 느낀다.
사회가 사람의 모임이고, 그 모임은 관계로 맺어진다고 할 때, 과연 형식적인 관계만 남은 지금 우리 사회를 사회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사람 사는 사회를 살아있는 유기체라고 하는 것은 그 관계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음이란 변화 발전을 의미한다. 사회 발전을 이루는 힘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사랑과 정이다.
그런데 이젠 우리 사회에서, 심지에 고향 마을에서 조차 사람의 정을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다.
정이 사라지면서 사회는 사회에서 무리로 변해가고 있다는 어느 문학가의 지적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그 징조들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 매일, 매시간 확인하고 있다.
무리로 변해가는 사람 집단을 다시 사람 사는 사회로 돌려놓는다면 인구문제는 물론이고 교육문제 등 많은 사회 문제들이 해결될 거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역시 문제는 실천이다.
무엇이든 철학이 없으면 이벤트밖에 안 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철학 없는 학교에는
이벤트성 행사만 있다.
그 행사에 중독되면 우리는 본질을 잃고 만다.
교육의 장례(葬禮)가 아닌 교육의 장래(將來)를 생각하고, 축하하는 행사들이 봄꽃처럼 가득 열리는 봄이 되길. 그 꽃들이 튼실한 열매를 맺는 2023년이 되길 바라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