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꽃(花)엄경 (이질풀)

칠불암 범어

by 이주형

꽃(花)엄경 (이질풀)

칠불암 범어


꽃은 피는 게 아니라

새기는 것이라고

칠불암 부처님께서

바람소리로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그래도

사람 손의 온기로

바위에 자리했지만


꽃은 허공을 바위삼아

땅의 온기로 자신들을

스스로 새겼다고


당신들의 시간은

꽃의 시간에

견줄 수도 없다고


당신은 억수 비에도

색을 잃기는커녕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꽃을 보면서 당신을 본다고

당신을 보듯 꽃을 보라고


바위에 새기는 것보다

허공을 새기는 것이

어떤지 아느냐고


허공에는 바위와는, 또

알량한 사람 마음과는

전혀 다른 결이 있다고

꽃은 그 결을 타고 논다고


마음결 하나 읽지도 못하는

이가 꽃결을 읽을 수

있기나 하겠냐고

종이에 새겨진 글자는

경전이라 하면서

왜 꽃은 함부로 대하느냐고


가을비 지나자

칠불암 마른 계곡에

다시 물길이 열렸다


마음 한 자락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에

바위 안거를 마치시고

물길 타고 오시는 부처님의

발자국 소리를 새긴다


발소리 끝에 이질풀이

허공 결을 타며

꽃잎을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