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위기 식물 보존 학교 정원에 이사 온 식물들의 목이 잘려나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바람에 부러졌나 생각했다. 아니면 학생들의 실수에 상처를 입었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일은 지속적으로 일어났고, 또 피해를 당하는 식물도 늘었다. 처음에는 키 낮은 꽃들이 피해를 입었는데 자세히 보니 새롭게 이사 온 곳에 어렵게 뿌리를 내리고 새싹을 틔우기 시작한 식물들의 연한 잎들이 규칙적으로 잘려나갔다.
범인을 잡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여느 날보다 출근 시간은 빨라졌다. 당연히 퇴근시간은 늦어졌다. 그리고 정원에 보내는 눈길은 많아졌다.
그러다 우연히 찾았다. 학교에는 방목한 토끼가 몇 마리 있다. 아이들이 좋아해서 별다른 조치 없이 아이들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란다.
수업 종이 치면 토끼는 잔디 밭에 나와 풀을 뜯는다. 그러다 쉬는 종이 치면 잔디밭을 불규칙하게 뛰어다닌다. 학교에서 자라는 토끼라서 그런지 아이들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토끼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면서, 교실이자 운동장인 잔디밭을 벗어나지 않았다. 좋은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토끼라서 역시 다르다고 생각하며 토끼의 존재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역시 방심은 금물이다. 그중 하얀색 토끼가 주변을 살피더니 조금씩 멸종 위기 식물 보존 학교 정원으로 방향을 옮기는 것이 보였다.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토끼를 관찰했다. 토끼가 달리기 시작한다. 조금의 망설임 없이 나도 내 방문을 열고 신발을 신는 것도 잊은 채 달렸다. 거의 동시에 출발했는데 나는 거북이었다. 토끼는사계국화 앞에 앉아 갓피기 시작한 국화꽃을 꽃밥처럼 맛있게 씹고 있었다.
"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었다. 쉬는 시간 시설 담당 선생님께 토끼의 진실을 알렸고, 토끼 이주를 부탁했다.
그 소식은 바람보다 빠르게 교실로 퍼졌고, 한 여학생이 나에게 눈물로 간절히 명령하고 있었다.
"선생님, 토끼 안 잡으면 안 돼요!"
질서 만들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토끼, 멸종 위기 식물, 그리고 학생! 이 중에서 제일 서열이 높은 것은 토끼였다. 그렇다고 토끼의 횡포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학생과 마라톤협상을 했다. 그리고 토끼를 정원 가족으로 받아들이자는 결론을 도출했다. 토끼가 정원 식물의 소중함을 알 때까지 수업 시간에는 내가 정원을 지키고, 쉬는 시간에는 학생이 정원을 지키기로 했다.
세상 일이 생각한 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 이후로도 식물의 피해는 오히려 늘었다. 학생과의 협상을 깨는 것은 마음이 아팠지만, 나의 토끼 이주 계획은 그 후로 더 치밀하고 더 엄밀하게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