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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중독 시간

기대와 기대, 그리고 기대

by 이주형


중독 시간

- 기대와 기대, 그리고 기대 -


내게도 큰 버팀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간이라도

건널 수 있었습니다

어떤 길이라도 가지 못 할 길이

없었습니다


기댈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는

기대어 살아본 사람만이

아는 진리입니다


기대의 시작이 기댐이라는 것도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닙니다


네, 그렇습니다

기대를 그리며 산다는 것이

지금껏 기대고만 살았습니다


기댈수록 기대는 커졌습니다

기대가 당연함이 되어가는 것도

모르고, 그 당연함의 맹목에

버팀목이 기울기를 잃어가는 것도

모르고, 기대에 중독된 삶은

지독한 일방통행으로 변했습니다


자기가 변한 것도 모르고

변했다고 어떻게 변할 수 있냐고

매일 몰아세우기만 했습니다


기대를 오염시킨 것은 나였습니다

기대는 기다림을 낳았지만, 이젠

그 기다림마저 오염되었습니다

오늘도 기댈 곳만 찾아

마음이 멉니다, 먼 마음에

원망이 기대어 옵니다

원망은 기다림을 눈멀게

하였습니다


눈먼 기다림에 희망마저

오염되었습니다


한 번도 기댈 곳이 되어주지

못한 것을 알기에

한 번도 미련 같은 기대조자

주지 못한 것을 알기에

미안하다는 말은

쏜 화살이 되어 내게 박힙니다


숨마저 말라버린 기대지만

봄이라고, 그래도 봄이라고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무에

기대어 봅니다

염치없는 혹시나가 기대를

불러보지만, 기대는 저 멀리서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제길을 갑니다


내게도 기대로 사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내게도 세상 가장 큰

기대 안에 살게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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