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1
- 인류세 1 -
우리는 매일 마음이
짓는 계단에서 살았다
때론 오름 길로
때론 허리 길로
때론 내림 길로
계단의 첫 디딤판은
언제나 미안함이었다
너를 밟고 서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밟고 섰다
미안함은 우리로 사는
숨이었다, 그 숨으로
사람 구실하며 살았다
그 숨 안에서 우리는 너를
거울삼아 나를 보았다
부끄러움이 보일 때
욕심은 스스로를 지우고
계단참을 만들었다
그때는 배려도, 이해도
희생도, 헌신도 더 이상
외딴섬으로 존재하지 않고
모두 디딤판이 되었다
하지만 구실이 뜻을 잃으면서
우리는 내게 눈 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미안함이 사라지고
부끄러움도 멸종했다
마음은 더 이상 서로를 위한
계단을 짓지 못했다,
미안함을 잊은 사람들이
섬이 되어 성난 혜성처럼
떠다녔다
인류세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