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학교, 다른 교무실 (上)
같은 학교, 다른 교무실 (上)
"오늘은 독일 공립학교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가이드의 독일 교육 설명이 40분 이상 이어졌다. 숙소에서 나온 후 첫 일정이라 버스 안은 고요한 계곡 같았다. 계곡이 깊을수록 울림도 강했다.
시차라는 걸 처음 경험했다. 그 경험은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매일 잠을 설쳤지만, 둘째 날까지는 어찌어찌해서 독일 시간에 적응하는 듯했다.
하지만 3일째부터 몸은 살기 위한 신호를 보냈다. 턱없이 부족한 수면 시간, 계속된 긴장감, 연수라는 책임감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담감은 결국 뇌를 자극했다. 두통약 없이는 한 시간도 버틸 수 없는 극도의 두통을 처음 경험했다. 다행히 동행한 간호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버티며 일정을 소화했다.
그런데 처방전은 뜻밖의 장소에 있었다. 독은 독으로 치료한다는 이독제독의 효과를 독일에서 경험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두통약의 도움으로 겨우 버스에 오르기는 했으나, 마음 같아서는 병원에라도 가고 싶었다. 그래도 지금 연수를 받기까지의 과정을 알기에 수지침부터 내가 아는 모든 요법을 동원해서 두통과 싸우며 연수 장소로 갔다.
프랑크푸르트에서 2시간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초중고등학교가 함께 있는 독일 공립 학교였다. 조금 변두리에 위치해서인지 규모가 꽤 있었다. 높이보다는 넓이에 기준을 두고 조성한 학교라서 공간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학교 관계자의 마중을 받으며 우리 연수단이 처음 향한 곳은 우리나라 교무실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교무실이라는 단어가 주는 고정관념에 젖은 나였기에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산도 그런 오산이 없었다. 교무실 문이 열리면서 펼쳐지는 신세계에 내 두통도 일순간에 사라졌다.
독일 교무실을 보고 처음 떠올린 이미지는 칸막이가 없는 대학교 도서관이었다. 정말 책상 위에는 책 몇 권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곳이 교무실이라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독일 공립학교는 재정이 많이 열악한가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교무실 모습을 떠올렸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교무실은 컴퓨터, 칸막이 등으로 철저히 영토가 나눠진 선생님들의 사적인 공간을 덧대어 놓은 모자이크 공간이 되었다. 지금 교무실은 칸막이 위로 올려진 선생님의 이름을 적은 표식이 없으면 그 교무실에 어느 선생님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독일 교육의 개방성과 우리나라 교육의 폐쇄성은 교무실 모습에서 시작되었다고 나는 확신했다. 우리나라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의 책상이 철옹성화 되면서 교무실엔 많은 것이 사라졌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대화와 학생이다. 하지만 독일은 달랐다.
교무실 모습에 몹시 당황해하는 교장 연수생을 위해 가이드가 말했다.
"놀라셨죠. 저도 독일에 와서 교무실을 보고 매우 놀랐어요. 여기가 진짜 교무실인가 의아해하시는 교장 선생님께서 분명히 계실 텐데요, 여기는 교무실이 맞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다.
어떻게 책상 위에 컴퓨터가 없습니까?
선생님은 업무를 어떻게 합니까?
학교 재정이 많이 어렵습니까?
쏟아지는 질문에 가이드는 예상했던 질문이라며 질문에 친절히 답해주었다.
"독일 선생님은 수업에만 전념하십니다. 행정 업무는 따로 처리하는 부서가 있습니다. 곧 쉬는 시간이라고 하니 독일 교무실의 분위기를 직접 느껴 보시죠!"
마침 종이 울리고 수업을 마친 독일 선생님들이 교무실로 들어왔다. 40명이 넘는 이방인에도 그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로 갔다. 그리고 곧 작은 모임이 만들어졌고 뭔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가이드에게 그 상황에 관해 물었다.
"지금 선생님들은 방금 수업을 하고 나온 동일 학년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 이야기와 앞으로 함께할 수업에 관해 서로 토의하고 있습니다."
독일 교무실 안에 독일 선생님들만 모르는 긴 한숨이 울려 퍼졌다. 그곳에는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거대한 교육 담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