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장인의 비극적인 복수
프라하에 오면 꼭 가보는 곳이 몇 군데 있지만 그 중 빠지지 않고 찾아가는 곳이 바로 프라하 천문 시계이다. 프라하 천문 시계, 정확한 명칭은 Pražský orloj(프라하 오를로이)로 프라하의 랜드마크이자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사람들이 오를로이 시계로 모여드는 이유는 600년이나 된 역사적 가치와 아름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매시 정각에 맞춰 펼쳐지는 퍼포먼스를 보기 위함이 가장 크다. 그래서 매시간 10분전에는 시계 퍼포먼스를 보기위한 관광객들 때문에 구시가 광장이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퍼포먼스가 기대보다 한참 시시하고 짧아 기다린 보람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처음 프라하에 왔을 때에는 제일 앞에서 보겠단 신념하에 20분가량을 기다려서 보았지만, 크게 실망한 이후로는 지나다니면서 시간이 맞으면 보고 아님 말고 식이 되었다. 오히려 시계 퍼포먼스 보다는 시계탑 꼭대기 전망대에 올라가 몰려든 관광객을 구경하는 것에 더 흥미를 느꼈다.
전망대는 시계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오른쪽 문에서 티켓을 구입한 뒤 시계 왼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서 올라가면 된다. 시계탑 꼭대기에 도달하면 아래서 보던 것과 전혀 다른 시선으로 프라하 구시가지를 바라 볼 수 있다. 단체 관광객, 연인, 그리고 소매치기 까지...(오를로이 시계탑 앞은 소매치기 피해가 가장 많은 곳이다.) 그렇게 사람 구경을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난간에 기대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왼쪽으로는 Týn Church(틴성당)과 프라하 연인으로 우리에게 유명해진 얀 후스 동상 그리고 뒤쪽으로는 프라하 성과, 프라하의 젖줄인 블타바 강(몰다우 강)까지, 마치 내가 프라하의 중심이 된 듯한 시점으로 프라하를 볼 수 있다.
다시 내려와서 이번에는 시계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오를로이 시계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는 12사도가 등장하는 제일 윗부분(Figures of Apostles)이다.
죽음을 상징하는 모레시계를 든 해골이 이제 죽음의 시간이 왔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퍼포먼스가 시작되면 거울을 든 사람(자만과 허영), 주머니를 든 사람(탐욕), 그리고 비파를 든 사람(유흥)들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죽음을 외면하고 위에서는 12사도가 차례대로 빙글빙글 돌면서 나왔다 들어간다.
재미있는 사실은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또 다른 옛 이야기에선 희망의 상징으로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Astronomical Clock 위를 자세히 보면 작은 창문 두개가 있습니다. 이는 예전에 귀족을 가두던 감옥으로 쓰였던 곳 입니다. 하루는 죄를 기은 기사가 이곳에서 자신의 집행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밖을 응시하다 우연히 참새가 움직이는 해골상으로 날아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정각이 되고 해골상은 우리가 다 아는 턱을 끄덕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우연찮게도 참새는 끄덕이는 해골의 턱 안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참새는 다시 정각이 되길 기다릴 수 밖에 없었고 기사는 문득 이를 보고 자신도 기다리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갇게 된 기사는 나중에 결국 무죄를 선고받고 사면되었으며 그 때부터 이 해골은 희망의 상징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시간을 나타내는 중앙 부분 (Astronomical Dial)이다. 이 Astronomical Dial은 당시 천동설이 지배적인 우주관이었음을 반증하듯 지구를 중심으로 제작되었다. 이 시계는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여 'Italian Time'이라 불리는 옛 체코 표준시, 중앙 유럽 표준시, 과거 천문학의 중심이었던 Babylonian Time(바빌론 시간) 그리고 황도 12궁과 월령까지 모두를 담고 있어 당시 최고 수준의 지식인을 제외하면 그저 시간만 알 수 있는 용도이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Astronomical Dial을 어려워하는 일반 시민들을 위한 시계인 제일 아랫부분(Calendar Dial)이다. 이는 일반 시민들을 위한 것으로 지금의 시계와 같이 12시를 기준으로 읽으면 된다. 가장 중심에는 프라하 성이 있고 그 다음 황도12궁 그리고 지금 가리키는 시간에 농민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그림과 마지막으로 보헤미아 때의 휴일과 각종 중요 날짜를 써놓은 것으로 구성되어있다.
이쯤 되면 이렇게 정교하고 복잡한 오를로이 시계를 누가 제작했는지 궁금한데 여기에는 비극적인 옛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프라하 천문시계(프리하 오를로이 시계)는 600년간 자리를 지키며 명실상부 프라하 최고 명물이 되었습니다. 이 시계는 1410년 Mikuláš of Kadaň에 의해 디자인 되었고 15세기 후반 당시 유럽 최고의 시계 장인이었던 Hanuš of Růže에 의해 완벽하게 완성되었습니다. 당연하게도 프라하 시의원들은 오를로이 시계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시계를 끔찍하게 아꼈습니다. 그 결과 Hanuš가 다른 곳에서 돈을 지원받아 이에 필적하는 시계탑을 만든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보다 더 완벽한 시계를 만든다고? 그것도 프라하가 아닌 다른 도시를 위해?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라며 시의원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시계 장인이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을 위한 시계를 만들지 않게 할지 강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잔혹하고 냉소적인 행동을 일삼은 한 시의원이 의견을 냈습니다. 이는 몹시 끔찍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시의원들도 곧 이것만이 프라하 시계탑을 세계에서 유일한 최고의 작품으로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달도 뜨지 않은 저녁, 시계 장인 Hanuš는 책상에 앉아 그가 구상하고 있는 시계탑의 스케치와 구상도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그의 조수와 하인들은 퇴근을 했고 집에는 Hanuš 혼자 남아있었습니다. 밖에는 비가 오기 시작했지만 집안은 아늑하고 고요했습니다. 촛불은 은은하게 비치고 나무 장작은 조용히 타들어갔습니다. 그는 양피지를 펼쳐 새로 구상하는 시계탑에 대한 수학적 계산과 스케치를 하며 간간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소문과는 다르게 다른 누구에게 시계를 위탁받아 만드는 것이 아닌, 프라하 천문 시계를 좀 더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것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날카롭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 급합니다!”
시계 장인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즉시 문을 열었습니다. 어둠속에서는 복면을 두른 3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한명이 달려들어 흉기로 위협하며 그를 방으로 몰아붙였습니다. 그들 중 두 명은 시계 장인을 꼼짝하지 못하게 붙들고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단검을 난로에 넣어 날이 빨갛게 될 때 까지 불에 넣어놨습니다.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눈치 챈 시계 장인은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 쳤습니다. 얼마 후 그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고통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는 침대에 누워져있었고 옆에는 그의 조수와 통곡하고 있는 하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어둠에 휩싸여있었습니다. 그는 장님이 된 것입니다.
Hanuš는 시력을 완전히 잃고 여전히 고통에 휩싸여 때때로 의식 없이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정신적으로 회복된 그는 서서히 이 일에 대한 배후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나에게 이런 끔찍한 일을 행하였고 왜 그랬을까...’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청에 다녀온 그의 조수가 급히 달려와 그가 들었던 대화를 Hanuš에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승님, 제가 오늘 시청에 갔다 두 명의 시의원들이 하는 얘기를 우연하게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일이 잘 끝낸 것을 기념하여 서로를 축하하고 있었고 더 이상 스승님이 오를로이 시계에 필적하는 다른 시계를 만들 수 없을 거라며 즐거워했습니다.”
이로써 Hanuš는 모든 범행동기와 이를 명령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갖은 노력 끝에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만들고 프라하에 공헌했다고 생각했던 그는 비통하고 억울했습니다. 점점 그 비통함은 분노로 바뀌었고 복수를 하기로 계획했습니다.
복수를 실행하는 날, 그는 그의 조수의 부축을 받으며 프라하 시계탑으로 갔습니다. 그는 시계를 어루만지며 부품 하나하나 그리고 마치 생명이 깃든 것처럼 움직이는 시계를 느끼며 지난날을 회상했습니다.
시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디에 어떤 부속이 들어가고 어떤 방식으로 서로 맞물리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알고 있는 Hanuš는 눈물을 흘리며 시계 깊은 곳에 있는 부속품을 시계를 만든 본인 스스로 파괴했습니다. 일정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던 시계는 마치 울부짖듯 괴기한 소리를 내며 멈추었습니다. Hanuš는 마치 모든 것을 잃은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시계는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지만 움직이지 않았고 수백 년 지난 후에 시계가 고쳐질 때 까지 움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름답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오를로이 시계에 이런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니, 더욱더 이끄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는 1961년 시계 제작에 관련된 고문서가 발견되면서 야사로 밝혀졌다. 정사는 1410년 시계 장인인 Mikuláš of Kadaň(미쿨라슈)와 천문학자이자 카를대학 교수인 Jan Šindel(얀 신델)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뒤로 1490년에 Calendar Dial와 고딕풍이 더해졌고 16세기 Jan Taborsky에 의해 개선되었으며 1865년 Josef Manes에 의해 대대적인 보수와 Calendar Dial을 현대적으로 개선시켰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손상 된 것을 복구하고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이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건 픽션이 가미된 야사이건 우리에겐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오를로이 시계 앞에서 눈 먼 시계 장인을 떠올리며 당시를 상상해도 좋고 해석하기 어려운 시계를 보여 지금 시간을 계산해 봐도 좋다. 우리는 지금 프라하의 중심이자 모든 관광 명소로 통하는 구시가지 광장, 그중 프라하의 랜드마크 오를로이 시계탑 앞에서 중세 유럽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프라하로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