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미슐 성의 유령
Litomyšl(리토미슐) 성은 르네상스 양식의 아케이드 성으로 이탈리아에서 개발되었지만 체코에서 변형, 발전되어 더 특별해졌다. 이러한 점이 인정되어 현재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사실 리토미슐을 가기 위해 예전부터 계획을 세웠지만 두 번이나 환승해야 하는 점과 애매한 기차 시간과 때문에 떠나지 못했었다. 그래서 리토미슐은 그냥 훌쩍 떠난 것이 아닌 가장 여유있는 날을 골라 계획을 짜서 출발했다.
기차가 약간 연착되어 두 번을 환승해야 하는 나는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환승을 제시간에 못하면 그 다음 열차는 두 시간 뒤에 있고, 그렇게 되면 성을 둘러 볼 시간이 한 시간밖에 없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환승역인 choseń(호센) 역 까지는 잘 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여기서 문제가 생길 뻔했다. 어쩌면 이날 프라하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다.
křivoklat(크르지보크라트)편에서도 설명했듯, 체코는 열차가 한 레인에 들어와 있어도 그 열차가 중간에 분리될 수도, 혹은 플랫폼에 두 개의 열차가 한 기차인 것 마냥 정차해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열차 플랫폼 전광판에 3a라고 쓰여있다면 그건 3번 플랫폼에 정차해있는 a, b열차 중 앞에 것을 타야 한다는 뜻이다. 저번 křivoklat 에 갈 때 그 실수를 해서 두 시간을 버렸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실수를 할 뻔했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프라하 교외 지역으로 나올수록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줄어 의사소통이 힘들어지는 탓이 크다. 가령 이번에도 이 열차가 리토미슐행 열차가 맞냐고 물어봤지만 웃으면서 “dva(둘)”하기에 당연하다는 듯이 두 정거장 더 가서 환승하면 되는구나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플랫폼에 있는 두 번째 열차를 타라는 뜻이었다.
다행히 승무원이 ‘동양인 여행객이 왜 이 열차를 타지' 하는 의문이 들어 우리에게 어디 가냐고 물어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정말 의도치 않게 먼 여행을 할 뻔했다. 체코 교외지역에서 기차를 환승할 때는 꼭 두 번씩 체크하고 타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자.
리토미슐까지는 시간에 따라 2~3번 환승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여태까지 갔었던 근교 중 가장 오래 걸렸고 복잡했다. 그리고 도착했을 때, 유네스코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인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이정표라던지 안내소가 없어 성을 찾기 쉽지 않았다.
결국 구글 지도를 열어 'Zámek Litomyšl'(Litomyšl은 방어를 위한 성이 아닌 귀족이 생활했던 영주의 성이라 Zámek으로 표기한다. 관련 내용은 Hrad와 Zámek 의 차이점 매거진(https://brunch.co.kr/@prague/7?m)에 자세하게 쓰여있다.)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는 이곳이 결코 작은 마을이 아니라는 듯, 우리나라의 이마트 격인 Penny가 자리 잡고 있고 여러 가게가 함께 있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스메타나의 웅장한 곡의 느낌을 풍기는 마을이 아닌 약간 우중충하고 심지어 우울함 까지 느껴지는 회색의 분위기였다. 스메타나 하우스 앞에 있는 지구본은 오래된 청동의 클래식한 멋이 아닌 오랜 세월 관리되지 못해 버려진 느낌이었고 스메타나 하우스 또한 역사를 가진 중세의 멋이 아닌 그저 오래된 낡은 건물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런 회색의 느낌은 10분을 채 넘기지 못했다. 르네상스 양식의 아케이드성이라 불리는 리토미슐 성을 보는 순간 나에게 리토미슐은 하얗고 화사한 마을로 다가왔다.
리토미슐 성은 중부 유럽 아케이드 성의 표본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을 정도로 예술적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인정받은 성이다. 특히 벽은 스그라피토(Sgraffito: 도료·플라스터·이장(泥漿) 등의 표면을 굳기 전에 긁어 바탕의 대조적인 색조를 드러나게 하는 장식 기법) 기법으로 장식되어 있어 그 아름다움과 특별함을 더한다. 정말 실제로 봐야 이 특이함과 오묘함의 조화를 눈으로 읽고 머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성에 내려오는 이야기는 온통 유령 이야기뿐이다.
The Haunted Chamber
1567년, 리토미슐성은 Vratislav of Pernštejn(페르슈테인의 브라티슬라브 경)의 소유였습니다. 그는 어두침침했던 요새를 르네상스 풍의 고즈넉한 성으로 바꾸길 원했습니다. 그는 결국 리토미슐 성을 그저 휘황찬란한 성으로만 만드는 것이 아닌 살기에 안락하기 까지 한 성으로 재건축했습니다.
하지만 성을 지은 이후 한 방에서 지속적으로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퍼졌습니다. 소문이 퍼지자 그 방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용되지 않는 방임에도 불구하고 밤 12시가 되면 그 방에선 기분 나쁜 소리와 쿵쿵거리는 소리 그리고 마치 방에 누가 있는 듯한 소리가 났습니다.
하루는 빈곤한 귀족이 잘 곳을 청해왔습니다. 하지만 브라티슬라브 경의 눈에는 그 귀족이 마음에 들지도 않았을뿐더러 더 이상 계급이 올라갈 것 같아 보이지 않아 집사에게 유령의 방을 내어주라 명령했습니다. 이를 모르는 빈곤한 귀족은 브라티슬라바 경에게 감사를 표하고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있는 유령의 방에 짐을 풀었습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12시 정각이 되었을 때, 머리맡에서 울리는 ‘쾅’하는 천둥소리에 화들짝 놀라 깨어 어둠 속을 응시했습니다. 사방에서 울리는 기분 나쁜 긁는 소리와 무엇인가 갈리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의 숨소리까지... 그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잠옷을 입은 채로 복도로 뛰쳐나가 집사를 깨워 그가 본 것을 얘기하고는 도망가버렸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성의 주인은 그 귀신이 누군가에게 실제로 해를 입힐까 두려워 문을 굳게 잠갔습니다. 하인들은 더 이상 그 방에 청소를 위해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습니다.
7년이 지나고 Mendicat(탁발 수도자)의 수도승이 리토미슐 성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식사와 잠자리 제공을 요청했으나 성에는 유령의 방을 제외한 모든 방이 꽉 차 있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오늘은 모든 방이 차있어요. 사실 딱 한 방이 있긴 한데, 사용되지 않은지 7년이나 된 방인데 괜찮으시겠어요?”
그러자 수도승은
“네 저는 괜찮습니다.”
라고 대답하며 한 마디 더 붙였습니다.
“잘 알고 계시듯, 제 의무는 신을 섬기고 복음을 전파 는데 있습니다. 이런 잠자리는 제게 과분할 정도입니다.”
그러자 집사가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유령이 나온다는 방입니다. 당신이 정말 괜찮다면 이 방을 드리겠지만, 밤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제 책임이 아닙니다. 괜찮으십니까?”
그러자 수도승은 웃으며 답했습니다.
“신이 절 지켜주시는데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7년 방에 열린 그 방은 깨끗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천장에는 거미줄이 가득했고 장식물들은 먼지에 뒤덮여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침대와 이불은 포근했습니다. 수도승은 짐을 풀렀고 곧 잠에 들었습니다.
자정이 되자 7년 전과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쾅’하는 천둥소리에 수도승이 깼고 어둠 속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네 이놈 무엇을 원하느냐! 네가 혹시 죄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이라면 얘기해보거라 내가 신의 이름을 빌어 너를 구원해주겠다!”
그러자 차가운 공기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Saecula Saeculorum!"
수도승은 즉시 이 말이 라틴어 인 것을 깨닫고 외쳤습니다.
“아멘!”
그러자 보이지 않던 유령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제 편히 잠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것이 마지막 소리였습니다. 유령은 사라졌고 수도승은 다시 잠에 들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집사는 궁금함을 못 참고 문들 두드렸습니다. 수도승은 지난밤의 얘기를 해줬고 이 소식을 들은 브라티슬라브 경은 이 수도승에게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유령의 방이라 불렸던 방은 이제 깨끗이 치워져 다른 방들과 처럼 아무 문제없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그 방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유령 이야기만 전해지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곳이다. 그리고 이곳이 정말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아이가 있는 가족이 함께와도 다 같이 함께 즐길 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성 옆 건물에 리토미슐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장치를 해놓은 장소다. 관광객들이 미로에서 퍼즐을 찾아다니며 리토미슐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해놓았는데,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곳으로 어른들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다. G가 써져 있는 단서를 찾아 마지막 문 앞에 있는 벽에 단어를 조합하면 잠겨있던 비밀의 방이 열린다.
미로뿐만 아니라 성의 정원에는 아이들 교육용 오락거리가 설치되어있어 아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리토미슐 성을 뒤로 하고 조금만 걸어가면 잔디가 깔려있는 아름다운 정원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특이한 조각상이 몇 개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모두 Olbram Zoubek(오브람 조벡)의 작품들로 프라하 여행 중 Petřín(페트르진) 전망대를 올라가 보았다면 이 사람의 익숙한 작품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Újezd(우에즈드) 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공산 정권 피해자 위령비로 기괴하다고 느껴지지만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다른 곳보다 가기 쉽지 않아 계획을 세우고 떠났던 리토미슐. 막상 가서 실망하면 어쩌가 고민했었는데 다행히 볼거리도 풍부하고 여유를 즐기기에도 좋은아 아주 만족스러웠다. 특히 리토미슐 성은 유네스코에 지정될 만한 가치가 느껴지듯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 되었다. 오는 길이 조금 어렵고 복잡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근교 여행지 중 만족한 상위권에 속한다고 말하고 싶다. #1에서는 리토미슐 성 내부와 유령 얘기만을 소개했지만 #2에서는 본격적으로 스메타나와 아름다운 리토미슐 마을을 소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