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비아, 실레지아 그리고 보헤미아
체코 여행기에 앞서 체코 영토에 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짧게 써보려고 한다. 영토는 아무래도 그 나라의 역사와 관계가 깊은데, 자칫 지루해질 수 있고 역사책이 될 우려가 다분히 있으니 체코가 크게 어떻게 나뉘고 구성되어 있는지 배경지식을 쌓는다는 목적으로 글을 적어보고자 한다.
체코는 유럽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과거 로마제국의 수도를 겸했을 정도로 지리학적 위치가 뛰어났다. 현대에 와서 우리 여행자들에게는 장기간 여행을 목적으로 머물기에는 가장 최적의 위치로 유럽 전역으로의 여행을 가능케 하는 곳이다.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많은 한국인 여행자들이 프라하로 모이게 되는지 설명이 된다.
체코는 크게 동부의 모라비아(Moravia, Morava), 동북부의 실레지아(Silesia, Slezsko), 그리고 중부를 포함한 서부의 보헤미아(Bohemia, Čechy), 3개의 지역이 하나로 합쳐진 국가이다.
하나씩 간단하게 살펴보자면, 먼저 모라비아 지방은 체코의 동쪽에 위치해 있는 지방으로 모라비아강이 이 지역을 지나감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다. 한때 독일의 일부, 체코와 슬로바키아 전역, 폴란드 일부, 크로아티아 일부에 그 세력을 떨쳤던 '대모라비아'의 중심지였고, 대모라비아의 멸망 이후에 보헤미아에 복속되었고, 합스부르크 왕가 등의 통치를 거쳐 현재의 체코 일부가 되었다. 모라비아 지방의 진주로 불리는 올로모우츠와 상업도시인 브루노가 있으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밀란 쿤데라와, 알폰스 무하의 고향이기도 하다.
실레시아 지방은 남쪽으로는 모라비아 지방, 북쪽으로는 폴란드, 남동쪽으로는 슬로바키아와 접한다. 1742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이후부터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1918년 이전까지는 오스트리아령 실레시아라고 부르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독일로부터 체코슬로바키아에 반환되었고 독일계 주민들은 동독이나 오스트리아로 추방되었고 현재의 실레시아 지방이 되었다.
마지막은 보헤미아 지방이다. 체코어로는 체히(Čechy)라고 불리며, 처음에는 체코 왕국의 정치적 중심이었고 점차 여기에 모라바, 슬레스코가 추가되어 현재의 체코 공화국이 되었다. 이 지방의 명칭은 서슬라브 계통의 부족 명칭인 '체시'(Češi)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체코 사람을 남성은 체흐(Čech), 여성은체슈카(Češka)라고 하며 복수는 체시(Češi)가 된다.
어려운 설명 필요 없이 보헤미아는 우리에게 '보헤미안 스타일', '보헤미안 랩소디' 등으로 친숙한 단어이다. 이는 과거 보헤미아 지방에 유랑민족인 집시가 많이 살고 있었고,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한 작가에 의해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예술가들을 지칭하게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널리 쓰이게 되었다.
현재 브런치에 쓰고 있는 여행기의 대부분이 이 보헤미아 지역이고 프라하 또한 보헤미아 지역에 속해 있기 때문에 '체코에 여행을 간다.' 하는 뜻은 곧 '보헤미아로 여행을 간다.'와 같은 의미가 된다.
또한 이곳이 체코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고 큰 지역임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체코의 국장이다.
체코의 국장은 네 개의 작은 공간으로 나뉜 방패 안에는 체코를 구성하는 세 개의 역사적인 지역인 보헤미아, 모라비아, 실레지아를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국장의 왼쪽 상단과 오른쪽 하단에는 보헤미아(빨간색 바탕에 금색 왕관을 쓴 은색 사자 문양이 그려진 문양), 오른쪽 상단에는 모라비아를 상징하는 문양(파란색 바탕에 금색 왕관을 쓴 빨간색과 은색 두 가지 색의 체크 문양의 독수리가 그려진 문양)이 그려져 있으며, 왼쪽 하단에는 실레지아를 상징하는 문양(금색 바탕에 금색 왕관을 쓴 검은색 독수리가 그려진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국장에서도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할 만큼 보헤미아 지방은 체코의 가장 중요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체코에는 더욱 깊은 역사와 복잡한 영토 구성이 있지만 간략하게 큰 틀을 가지고만 체코의 영토 구성을 알아보았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듯, 여행을 하는데 있어 미시적으로 무작정 유명한 도시를 다니는 것보다는 거시적인 시야를 갖고 전체적인 지도를 머릿속에 넣어 여행 루트를 천천히 곱씹어 보며 그 나라를 느끼는 것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온전히 한 나라를 여행하는 최고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