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기사를 동경한 페르디난트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사건의 장본인으로 오스테리아-헝가리 제국의 왕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Franz Ferdinand)와 그의 부인인 조피(Sophie Chotek)가 세르비아계의 학생인 가브릴로 프린치프(Gavrilo Princip, 1894~1918)에게 암살되었다. 이 사건을 빌미로 1914년 7월 28일에 오스테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코노피슈테 성은 페르디난트 황태자의 관저로 그의 컬렉션들이 유명세를 타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성 게오르기우스를 동경했던 페르디난트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야심가로서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헝가리 왕위 후계자이자 코노피슈테 성의 소유주였다. 그의 야심은 끝이 없었는데 한 가지 예로, 그의 명령으로 하루아침에 수 천 마리의 사슴이 사냥되어 그 뿔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성 복도에 진열되었을 정도다(현재도 각종 사냥감이 성에 보관되어있다.)
그러한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새롭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 있는데, 바로 용을 무찌른 성인인 성 게오르기우스의 유물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는 성 게오르니우스의 유물 보관 장소를 따로 만들었고 이는 곳 갖가지 유물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성 게오르기우스에 대한 유물이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영국의 왕 조지 5세가 성 게오르기우스의 유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영국 왕의 콧대를 꺾기 위해 조지 5세 왕을 자신의 성으로 초대했다. 그 당시에 그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유물을 수집했는데, 그의 수집품에는 파이프, 무기, 동전 등을 가리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자신의 꿈이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가 사라예보에 방문한 1914년 6월 28일, 자객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비록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불행한 운명으로 본인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집착 아닌 집착 때문에 후세의 사람들이 성 게오르기우스의 소장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는 사냥을 워낙 좋아했던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이집트, 남아프리카, 심지어 오스트레일리아까지 가서 사냥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Konopiště 성의 내부 복도에는 수많은 동물이 박제되어 빼곡하게 전시되어있다. 성 내부 투어를 통해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모았던 성 게오르기우스의 유물과 사냥을 하면서 수집한 수많은 박제동물을 볼 수 있다.
#4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