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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선규 Mar 26. 2016

체코 코노피슈테, 용의 기사가 잠든 곳 #1

코노피슈테(Konopiště), 체코여행의 첫 시작.

 항상 처음이 힘들다. 처음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두려움과 막막함은 어느 누구에게나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처음이라 힘들고 처음이라 어색하다, 하지만 처음이라 설렌다. 이처럼 처음은 많은 표현을 함축한다.     


                                      막상 시작하면 별거 아닌데 우리는 왜 그렇게 처음이 힘들까?


 체코 여행을 시작하면서 어디를 처음으로 갈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처음이니까 가기 편하고 가까운 곳으로’, ‘처음이니까 정보가 확실한 곳으로’ 라며 도전할 생각보다는 편함과 익숙함에 안주하려 했다.    

그렇게 차일피일 계획을 미루고 있던 어느 날, 체코 친구에게서 용과 관련된 도시를 듣게 되었다. 친구와 얘기를 나누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용(龍, Dragon)에 대한 인식이다. 아마 동양과 서양의 인식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존재 중 하나이지 않을까한다. 서양에서는 주로 부정적이며 물리쳐야할 대상으로 생각하지만 동양에서는 신비롭고 성스러운 존재이자 행운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주제에 푹빠지게 된 나는 용과 전설이라는 신비감에 휩싸여 홀린 듯 프라하 중앙역(Praha hl.n)로 향했다. 


 코노피슈테는 여행책자에서 소개하는 다른 지역들과 다르게(예를 들면 프라하, 체스키 크룸로프) 지명 이름이 아닌 성 이름으로 베네쇼프(Benešov)라는 지역에 있다. 그래서 베네쇼브행 티켓이라 말하지 않으면 엉뚱한 곳으로 갈 수 있다.  

베네쇼프는 프라하에서 서남쪽으로 25km 정도 떨어져 있는 근교로, 기차를 이용할 경우 40분밖에 걸리지 않아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이다. 굳이 단점이라면 옆사람과 길게 얘기를 나누기도 전에 도착한다는 점이다. 

베네쇼브에 이르기까지 나는 전형적인 체코 아저씨와 함께 앉아갔다. 어김없이 손에는 맥주를 들고 있고 술기운에 기분이 업되어 흥겨운 상태였다. 

-공산주의 세대의 체코인들은 과거 소련 시절 비밀경찰을 경험했던 탓에 감정을 숨기고 있어 겉으로는 불친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조금만 얘기하다 보면 경계를 풀고 금세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을 준다-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받은 나는 부족한 정보를 얻기 위해 코노피슈테성에 관해 얘기를 꺼냈는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재미있는 사실을 한 가지 발견하게 되었다. 이는 뒤에 성에 도착할 무렵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자.

 

베네쇼프 역

 역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한산했다. 보통 역 앞에는 식당과 펍이 있기 마련인데 이곳은 간이역인지 기본 편의시설이 거의 없었다. 일단 지역의 정보를 얻기 위해 ‘i'라고 써진 표지판을 찾아 인포메이션 센터로 향했다. 걸어 다닐수록 한적한 유럽의 시골 도시 느낌이 물씬했다. 아직은 차갑지만 신선한 느낌의 바람과 작은 다운타운에서 아이들과 산책하는 가족의 모습에 나만 조급해 보이는 모습이 민망하여 근처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여유가 느껴지는 베네쇼프

점심으로는 도시락을 준비해왔는데, 유럽에 살게 되면서 저렴한 재료비를 이용한 요리에 재미를 느낀 탓이다. 현지에서 사 먹는 것도 좋은 경험이고 음식에 대한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 기회지만 가끔은 내 손으로 만든 도시락을 들고 떠나는 여행도 꽤나 매력적이다.

 

점심을 먹고는 앞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어갔다. ‘동양인이 왜 여기까지 왔지?’하는 눈빛이었지만 (책을 쓰는 지금에야 ‘정말 동양인이 안 가는 곳이어서 그랬구나’ 하는 걸 느끼지만 당시에는 오해하여 기분이 나빴던 적이 많았다.) 이내 경계심을 풀고 재미있다는 듯 마을에 대한 관광지 설명과 함께 책자와 지도를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베네쇼프의 아이들
아기자기하게 만든 마을지도

지도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표시되어 있어서 상당히 마을이 클 것이라 예상했지만 막상 다녀보니 근처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교회와 탑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공동묘지가 하나 있었는데, 대낮이어서 그런지 으스스한 느낌보다는 휑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지도에 표시된 곳을 하나하나 순서대로 찾아가다 보니 어느덧 페르디난트(Ferdinand)라는 지역 맥주브루어리에 다다랐다.

프라하에서도 판매하는 퍼디난드 맥주 공장

프라하에서도 몇 번 봤던 맥주라 호기심이 생겨 공장 옆에 있는 기념품 가게로 들어갔다. 정말 우리나라 시골의 막걸리 공장에서 막걸리를 팔 듯 굉장히 조촐하고 직원마저 허술함 투성이었지만 왠지 정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래 구경할 곳은 아니기에 병맥주만 한병 사서 나왔다. (사실 체코어로만 되어있고 직원도 체코어 밖에 하지 못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한 손에는 맥주, 한 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용의 기사가 잠들어 있는 코노피슈테 성으로 향했다. 베네쇼브에서 코노피슈테 성까지의 거리는 지도상으로 30분 정도지만 윈도우 바탕화면에서만 보던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있어 시간의 흐름을 알아채기 어렵다. 풍경을 안주삼아 맥주를 홀짝이며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도착했다. 

코노피슈테 성으로 향하는 길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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