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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선규 Mar 27. 2016

체코 코노피슈테, 용의 기사가 잠든 곳 #2

용을 무찌른 백마탄 기사, 성 게오르기우스

 앞서 기차에서 나눈 이야기를 이제 꺼낼 차례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차이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큰 차이 중 하나는 용에 관한 인식이다. 우리는 대게 용하면 성스럽고 신비하여 행운을 부르는 영물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이라 하였으며 임금의 옷을 용포(龍袍)라고 하였는데 이는 과거부터 우리가 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반면, 서양에서 보는 용(Dragon)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과 많이 다르다. 굳이 어렵게 문학 작품에서 찾을 필요 없이 영화만 봐도 서양에서의 용의 이미지를 알 수 있다. 영화 <호빗>의 스마우그, <해리포터>의 혼테일 등 모두 인간에게 해가 되고 파괴적인 모습만을 보여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번역상 오류다. 동양의 용은 중국을 기원으로 9가지 종류의 신성한 동물을 합성한 모습이고 서양의 용은 도마뱀을 기원으로 괴수로 발전된 형태로 사실상 서로 전혀 다른 존재가 생김새가 비슷하여 벌어진 번역상 오류로, 용(龍)이란 명칭을 같이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보통 서양의 전설이나 신화를 보면 멋있는 기사가 용을 물리쳐 나라의 영웅이 되거나 왕이 되는 이야기가 많다. 성 게오르기우스(St. George)의 전설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용을 무찌른 백마탄 기사, 성 게오르기우스

 포악한 용 한 마리가 리비아의 작은 나라 시레나 근처 호수에 나타나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용은 시레나 점령하고 매일 인간 제물을 요구하며 제물을 바치지 않을 경우 사방에 독을 내뿜기 시작하였다. 이 작은 나라의 왕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매일 젊은이들을 제물로 용에게 바쳤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수는 금세 부족해졌고 결국 왕의 외동딸 클레오린다(Cleolinda)를 용에게 바쳐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공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흐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용이 살고 있는 호수로 향했다. 용은 호수 한 가운데에서 공주를 기다리고 있었고 흉악하고 거대한 용의 모습을 본 공주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 

용이 공주를 집어 삼키려는 그때, 어디선가 빛을 받아 빛나는 푸른색의 청동창이 날아와 용의 목을 꿰뚫었다. 카파도키아에서 온 젊은 기사 게오르기우스가 제물로 바쳐진 공주의 소식을 듣고 며칠을 달려와 긴 창으로 일격에 용을 제압한 것이다. 게오르기우스는 용의 머리를 도시에 걸어 놓고 뛰어난 언변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작은 나라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기독교로 개종을 하였고 게오르기우스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훗날 게오르기우스는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로 잔혹한 고문을 받다 참수형에 처해졌다. 기독교인들은 이 소식을 듣고 게오르기우스를 성인으로 추앙기 시작했고 이는 전역에 퍼져 영원히 용의 기사이자 나라를 지켜주는 수호성인으로 남게 되었다. 

용을 무찌르는 성 게오르기우스

 성으로 이어지는 숲을 통과하자 서서히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입구를 통과해서 바라본 코노피슈테성은 지금까지 사진으로 봐왔던 아름다운 성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작고 아름다운 요새와 같은 느낌이 강했다.

성 입구에 있는 용의 기사

이러한 점 때문인지 코노피슈테성은 예식장으로도 활용되고 있었는데, 마침 운 좋게 결혼식 장면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우리와 다른 서양의 결혼식 문화 때문인지, 많은 사람이 와서 결혼을 축하하기 보다는 가족끼리 조촐하게 의미 있는 날을 보내는 느낌이었다. 성문 앞에는 꽃과 레이스로 장식된 차들이 신혼부부를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었고, 성 안으로 들어가니 막 결혼한 신랑 신부가 가족, 친구들과 결혼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성 아래쪽에는 결혼식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어줄 장미정원이 있는데, 200종의 장미가 과거 성의 위상을 보여주는 듯 했다.

이런 로맨틱한 곳에서 결혼을 한다니, 정말 영화와 같은 상황이라 넋 놓고 결혼식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성 구경은 결혼식이 끝난 뒤에 천천히 하기 시작했는데 성의 정원 한 가운데에는 용을 본뜬 우물부터 창을 든 용의 기사 동상과 벽화까지 온 성에 용이 그려져 있었다.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물건 또한 용과 관련된 것이 많았다. 하지만 사실 이곳이 유명해진 까닭은 용 때문이 아닌 프란츠 페르디난트(Franz Ferdinand) 때문이다. 이름을 들으면 '오면서 먹던 맥주 아닌가?'할지 몰라도 세계 제1차 대전의 시발점이 된 사라예보 사건의 주인공이라 하면 누군지 감이 잡힐 것이다.


#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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