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선규 Sep 12. 2015

은의 도시 Kutná Hora #3

세 번째 이야기, '해골성당' 과 '은'

 저번 쿠트나 호라 때의 실패를 경험 삼아 화창한 아침 날씨를 보고 가기로 결정했었다. 그러다 문득 날씨에 대한 생각을 찬찬히 하게 되었다.

 민족의 특성, 민족의 특질은 날씨에서 오는 것 같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우리나라의 자랑거리로 ‘뚜렷한 사계절’을 참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여름은 찜통처럼 덥고 겨울은 아리도록 춥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후적 특성 때문에 우리는 ‘빨리 빨리’라는 문화가 기본적으로 자리 잡아왔고 또한 그게 당연히 된다고 생각한다. 반면 유럽, 그중에서도 지중해성 기후에 위치한 나라들의 사람을 보면 기후가 평온하기 때문인지, 기본적으로 삶의 여유라는 것을 내재하고 산다. 물론 민족의 특성이나 특질이 기후에만 국한되어 형성되진 않았겠지만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거라 생각된다.

 다행히 오늘은 청량감 있는 날씨로 여행을 가기 최적의 날이었다. 중앙역에서 쿠트나 호라행 표를 끊는데,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얼마 전 영국 런던에 여행 갔을 때 만났던 누나였다. 이 누나는 핑크 사랑이 유별난데, 가지고 있는 모든 게 핑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래서 두 달이나 지났지만 한 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사실 그때 다 같이 만났던 친구들과 종종 연락을 하는 편이라 누나가 동유럽을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는데 이렇게 예고 없이 우연히 마주칠 줄은 몰랐다. 누나는 오늘 밤기차로 떠나는데, 그동안 프라하에서 가볼 곳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마침 근교 다녀올 예정인데 같이 가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한국인 여행자가 보통 다 그렇듯 체스키 크룸로프 외에는 체코 근교에 대해 거의 모른다. 사실 추천해 주기도 조심스러운 게, 체스키 크룸로프는 그 광경 자체가 예쁘고 아름다워서 인상적이지만 다른 근교들은 그곳에 대한 전설이나 이야기를 모르고 보게 되면 그저 시시한 성이나 동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누나가 살짝 망설이는 게 보이자 나는 은광 요정과 함께 해골 성당이 있다는 얘기를 살짝 언급했다. 결국 은광 요정에 넘어간 누나는 나와 같이 쿠트나 호라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저번 쿠트나 호라 여행기에 썼듯, 쿠트나 호라에는 총 3개의 정거장이 있다. 이번에는 성 바르바라 대성당이 아닌 성모 마리아 대성당과 해골성당을 먼저 봐야 했기에 세들레치 역에서 내렸다.     

 사람들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눈앞에 바로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나타났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

 체코에서 가장 큰 바로크 양식의 성당으로 전쟁 때 불에 타 소실되었다가 1707년 다시  복구되었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 또한 성 바르바라 대성당처럼 1995년에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재된  외관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특히, 그 어느 성당 중에서도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매우 유명한 곳이다. 또한 쿠트나 호라의 옛날 얘기 중 시토 수도회가 언급되는데, 그 수도회의 건물이 성모 마리아 대성당 옆에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 하늘에 닿을 듯, 높은 천장과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이런 성당에 들어오면 분위기에 압도되어 자연스럽게 기도라는 예의를 차리게 되는 것 같다. 짧은 기도를 마치고 성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상부터 가톨릭의 박해를 표현하는 그림 그리고 이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오르간 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에 어울릴 법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성자의 유해 즉, 성해였다. 우리에겐 생소하고 어찌 보면  그로테스크할지 모르지만 이곳 유럽에서는 성해가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다. 체코 사람들이 가장 큰 보물로 여기는 것이 프라하 비투스 성당 안에 있는 성  비투스의 성해라고 할 정도로 유럽에서는 성스럽고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자면 우리나라의 중요 사찰에 존경받는 스님의 사리를 탑에 모셔두는 것과 같다.

 성해를 정신이 팔려있었지만 어느 샌가 들려오는 깊고 웅장한 오르간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이곳의 오르간은 건축 양식 때문에 더욱 깊고 풍부한 소리를 낸다. 오르간에서 나오는 소리가 기둥을 타고 올라가 아치형으로 된 천장을 치고 내려오는 이 깊은 소리는 다른 성당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감동으로 다가 왔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간다면 꼭 오르간 연주를 들어보길 권장한다.     


 오르간 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저번에 놓쳤던 코스트니체 세들렉 성당 일명, ‘해골성당’으로 향했다. 우리나라  '서프라이즈'라는 텔레비전 프로에도 나왔고 2012년 'CNN go'에서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소름 돋는 장소 7곳'에도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햇볕에 느긋하게 걷다 보니 어느새 해골성당 앞까지 왔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무덤이 있어 이곳이 정말 성당인지 공동묘지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정말 옛날 무덤부터 2000년대에 들어온 무덤까지, 몇 백 년의 차이가 나지만 모두 같은 곳에 동일한 신분으로 안치되어있었다.      

세들렉 성당 내 묘지

 해골성당은 총 4가지의 티켓을 판매하는데, 해골성당만 입장하는 티켓 1(90kc), 성모 마리아 성당까지 입장 가능한 티켓 2(110kc), 성 바르바라 대성당까지 입장 가능한 티켓 3(185kc), 그리고 예수회 대학까지 입장 가능한 티켓 4(305kc)이다. 개인적으로 성 바르바라 대성당까지 입장 가능한 티켓 3을 사는 걸 추천한다.  

입장권 종류

 해골성당 입구부터 이미 부위별 뼈로 절묘하게 만든 거대한 해골 촛대에 압도당했다. 하지만 이는 안에 있을 다른 것들의 전초전일 뿐이었다. 이 성당의 가장 인상 깊은 해골 장식물은 바로 성당 중앙에 매달려있는 해골  샹들리에이다. 그 재료가 괴기스럽긴 하지만 자체로만 보면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도 인상적이다. 특히 이 샹들리에의 놀라운 점은 그 발상과 정교한 솜씨도 대단하지만 더 특별한 점은 신체의 모든 부위를 빠짐없이 사용했다는 사실에 있다. 여기의 모든 것은 프란디섹 린트라는 목각사가 약 4만여구의 해골을 이용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누구고 어떤 일을 당했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왜 여기에 묻히게 된 걸까?  

인체의 모든 뼈로 만든 샹들리에. 납골당내의 작품중 최고로 평가된다.

  

조각가 František Rint의 서명

이에 대한 설명은 성당 앞에서 나눠주는 안내서에 자세하게  설명되어있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과거 흑사병과 후스전쟁때 죽은 사람들의 유골을 이곳에 모아두게 되었고 1870년 슈바르젠베르그(Schwarzenberg) 가문의 부탹을 받은 체코 목조 조각가 František Rint에 의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막연한 죽음에 대한 생각.. 사람이란 죽음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고 초연해지는 것 같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든 적은 사람이든, 사회적 지위가 높건 낮건 죽음 앞에선 모두 동등해지기 때문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마음이 많이 무거웠는데, 마침 십자가 상 앞에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곳이 조촐하게 마련되어 있어 초를 피우고 잠시 묵념을 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마음을 추스르고 이탈리안 궁전으로 향했다. 이곳은 쿠트나 호라가 은으로 번영했던 영광스러운 시기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며, 은에 관련된 이야기를 따라 여행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입구의 두꺼운 철문과 문 위에 라틴어로 ‘손대지  마시오!’라고 쓰여 있는 글귀를 통해 이곳이 예전 체코의 중요한 곳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어디선가 “땅! 땅!‘ 하는 망치 두들기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이곳에선 관광객들을 위해 중세시대 방식 그대로 은화 만들기를 시연하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 때문에 당시 쉴 새 없이 일하던 은화 제작자들 열의 한 명은 청력을 잃었다고 한다. 은화에는 그 당시 체코가 담겨있는데, 앞면에는 체코의 상징인 사자가, 뒷면에는 체코의 왕의 이름과 함께 왕관이 새겨져 있다. 이 은화는 ’프라하  그로셴‘이라고 불렸으며, 순도가 높아 당시 유럽 전역에서 국제통화로 사용되었다.     

프라하 그로센

 

 이탈리안 궁전을 나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쿠트나 호라 모든 전설의 배경이 된 은광이다. 지금은 폐광된 곳이지만 관광객을 위해 전체 깊이 430m 중 제한된 깊이인 33m까지 가이드를 통한 투어가 이뤄지고 있다. 은광으로 입장할 때는 당시 광부들이 실제로 입었던 하얀 작업복과 안전모를 쓰고 들어가야 한다. 하얀색 작업복을 입는 이유가 궁금해 가이드에게 물어봤더니 생각보다 그 이유가 단순했다. 당시에 가장 저렴하게 작업복을 만들 수 있었던 재료가 하얀 천이었기 때문이란다.     

 좁은 통로를 통해 지하로 향하면서 우리보다 거대했을 서양 광부들은 얼마나 힘들고 고되었을까 생각했다. 또한, 쿠트나 호라의 옛날 얘기처럼 동굴 안으로 물이 들이 닥친다면 피할 곳이 하나도 없어 꼼짝없이 죽겠구나 하는 공포가 나를 엄습했다. 깊이 들어갈수록 온도는 낮아지고 왠지 은의 요정이 나올 법한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길이 이어져있었다. 마침내 입장이 허용된 구역까지 가자 예전에 광부들이 일했던 모습 그대로 재현해놓은 세트장이 나왔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은 등불 하나에 의존해 은을 캤던 그들이 있었기에 보헤미아 왕국의 찬란했던 문화가 꽃피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뜻하지 않았던 문제로 다시 한 번 오게 된 쿠트나 호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저번에 따듯했던 느낌과 달리 어둡고 차가운 느낌이었지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이곳이기에 '이중적 매력'이라는 느낌이 더욱 와 닿았다.

 최신의 것만 찾고 편리한 것만 찾게 되는 지금 이 시대에 과거 모습을 그대로 보전하고 중세의 찬란함을 느낄 수 있는 쿠트나 호라로 하루정도 떠나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