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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경훈 Aug 06. 2019

응급실 일기

중환자실은 붐빈다 

 1.
 "제가 그쪽 병원 의료진에게 분명히 통보했는데 이러면 곤란합니다."

 깊은 밤과 이른 새벽의 경계, 응급실에는 나와 응급실 간호사들, 129(사설 이송업체) 운전기사, 129 소속 응급구조사, 중년의 보호자 그리고 129의 이동식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응급실에 있는 사람의 숫자가 적지 않으나 환자는 한 명뿐이라 어떤 측면에서는 예외적으로 조용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무거웠다.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만 이 병원 OOO과장이 주치의라서요."

 중년의 보호자는 정중하게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매우 드문 반응이다. 대부분의 보호자는 '내가 여기서 치료받겠다고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태도를 보이거나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아니면 '병원이 어떻게 이럴수 있느냐?'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OOO과장은 심장내과 의사입니다. 막힌 심장 혈관을 뚫는 전문가라구요.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환자는 패혈증 가능성이 높은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3-4시간 전 인근 요양병원에서 온 전원 문의는 다음과 같았다. 

 '하루 전부터 발열과 복통이 있었으며 저혈압도 확인되어 수액을 투여했으나 호전되지 않아 전원하겠다. 보호자가 강력히 원하며 그쪽 병원 외래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환자다.'

 물론 우리 병원 외래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경구약을 처방받는 환자였다. 그러나 그 기간은 길지 않았고 원래 고혈압과 관절염이 있어 집 근처 의원과 병원을 다녔으나 수개월 전 갑작스레 전신 쇠약감을 호소하며 경미한 저혈압 증세가 있어 우리 병원을 찾았고 '의인성 쿠싱 증후군(iatrogenuc Cushing syndrome)'으로 진단받고 입원한 것이 시작이었다.  

 의인성(iatrogeniuc)이란 단어는 '인위적인 요인으로 발병했다'는 뜻인데 쉽게 말해 시술이나 술기의 부작용 혹은 약물의 남용 및 부작용으로 나타난 질환을 의미한다. 그래서 의인성 쿠싱 증후군은 스테로이드를 오랫동안 복용하여 살이 찌고 피부가 약해지고 얼굴이 동글동글해지는 외모 변화와 함께 부신 기능이 저하되는 질환을 얘기한다. 강력한 염증 억제물질이며 신체적 스트레스 상황을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테로이드는 원래 신장(kidney) 위에 위치한 부신(adrenal gland)이란 장기에서 분비된다. 그런데 다량의 스테로이드를 외부에서 오랫동안 투여하면 앞서 말한 외모 변화와 더불어 부신의 기능이 저하되어 몸에서는 스테로이드가 분비되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그런 상황에서 갑작스레 스테로이드 복용을 중단하면 무기력증, 저혈압, 의식 저하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환자가 그런 사례에 해당했다. 

 환자는 길지 않게 입원하고 퇴원한 다음 내분비내과 외래를 방문하여 서서히 복용하는 스테로이드의 용량을 줄이기로 계획했고 그러면서 고혈압 역시 우리 병원 심장내과에서 진료하기 시작했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이유는 쿠싱 증후군으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고 기존의 관절염으로 보행도 원활하지 않기 때문인데 1-2일 간 복통, 구토, 발열이 있었고 요양병원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저혈압이 발생해서 '상급병원 전원'이 결정되었다. 요양병원은 전원 문의를 하지 않고 환자를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날은 미리 전원 문의했고 일반적으로는 수용 가능한 환자였으나 나는 '수용할 수 없습니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환자를 수용할 수 없다고 답변한 이유는 중환자실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혈압과 쿠싱 증후군이 있는 환자가 구토, 복통, 발열을 호소하다가 저혈압이 나타났다면 패혈증일 가능성이 높고 그런 경우 중환자실 입원이 필요하다. 그러니 중환자실이 만원이라 자리가 없다면 환자를 수용할 수 없다. 

 그런데 정말 중환자실 자리가 없으면 패혈증 같은 중환자를 수용할 수 없을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일단 응급실에서 패혈증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물론 '진료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뿐 '완치하여 회복시키는 것'은 어렵다. 감염이 특정 장기에 국한되지 않고 세균이 혈액을 통해 몸 전체에 독소를 퍼뜨려 다양한 장기 손상이 발생하는 패혈증은 건강한 사람도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는 무서운 질환이다. 그러나 치료 계획 자체는 세우기 어렵지 않다. 우선적으로 다양한 세균을 공격할 수 있는 광범위 항생제를 정맥으로 투여한다. 그리고 대량의 수액을 정맥으로 투여해서 저혈압을 교정한다. 대량의 수액을 투여해도 저혈압이 교정되지 않으면 노르에피네프린이나 도파민 같은 승압제(inotropic agent, 혈압을 상승시키는 약물) 투여를 고려한다. 동시에 패혈증을 일으킨 감염의 원인을 규명해서 시술이나 수술이 필요한지 판단하고 패혈증 외 다른 질환이 동반된 것이 아닌지도 확인한다. 그러면서 원활한 치료를 위해 중심정맥관 확보나 인공호흡기 치료가 필요한지 여부도 판단해서 시행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패혈증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숙련된 응급실 전담의사라면 어렵지 않게 수행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앞서 말했듯 예후는 장담할 수 없다. 능숙한 의료진에 의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치료를 진행해도 패혈증에 걸린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의학'에는 해당하지 않으나 '의료'에는 틀림없는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 병원의 규모와 관련된 문제이며 어떤 측면에서는 다분히 구조적인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데 공식적인 중환자실이 있고 심혈관 조영술 같은 시술도 응급으로 가능하나 우리 응급실은 10병상이며 응급실 전담의사 1명과 간호사 3-5명이 하나의 근무조를 이룬다. 그래서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을 경우 패혈증 환자를 응급실에서 며칠씩 치료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패혈증이 아니라 급성 심근경색이면 심혈관센터에서 심혈관 조영술을 시행하고 다시 응급실로 내려와 중환자실 자리가 생기거나 환자의 상태가 심장내과 병동 입원이 가능할 때까지 머무는 것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심장내과 의사가 환자를 책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과의 어느 분과도 중환자실 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패혈증 환자를 책임지려 하지는 않는다. 패혈증이라도 저혈압 상태에서 회복해서 어느 정도 안정되어 내과 병동으로 입원시킬 수 있는 환자는 내과의 해당 분과가 책임질 테지만 그렇지 않은 환자는 누구도 데려가지 않는다. 물론 레지던트 시절에도 그런 일은 빈번했다. 내과의 다양한 분과가 서로 '우리 분과에 해당하는 환자가 아니다'며 환자를 미룰 때가 적지 않았고 때로는 '골수염으로 인한 패혈증'처럼 내과와 정형외과가 서로 자기네 환자가 아니라고 싸울 때도 있었다. 내가 레지던트 3년차가 된 후부터는 그런 환자가 어느 정도 회복할 때까지 응급실에서 응급의학과가 담당했다. 그러나 지금 근무하는 병원은 대학병원이 아니고 이곳의 응급실 전담의사는 나와 동등한 동료일 뿐 나의 아랫년차 레지던트가 아니다. 따라서 내가 독단적으로 '중환자실 자리가 나거나 환자 상태가 안정할 때까지 응급의학과에서 치료하겠다'고 결정할 수 없다. 

 그래서 중환자실 자리가 없는 상태에서 중환자실 입원이 필요할 가능성 높은 환자의 전원 문의를 접하면 '수용이 가능하지 않다'고 통보하고 '여기 와도 상급병원으로 전원한다'고 완고하게 덧붙일 수 밖에 없다. 설령 내가 환자를 어느 정도 안정시켜도 일반 병실로 입원이 가능한 정도가 아니면 내과의 누구도 선뜻 환자를 담당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환자를 응급의학과에서 담당하는 것에는 다른 응급실 전담의사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나의 '수용 불가 통보'에도 불구하고 보호자는 막무가내로 환자를 데려왔다. 그러니 나의 머릿 속은 복잡할 수 밖에 없었다. 

 쿠싱 증후군과 고혈압이 있는 환자는 평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고 응급실 도착 당시 혈압은 90/60 정도였다. 요양병원에서 수축기 혈압이 70-80이라 얘기한 것에 비해서는 상태가 나쁘지 않았고 체온은 38도였다. 호흡곤란은 없고 요양병원에서는 복통과 구토가 있다고 했으나 이학적 검사 결과 압통없이 부드러운 복부가 확인되었다. 그러니까 폐렴이나 간담도계 질환으로 인한 패혈증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았고 요로 감염일 가능성이 높았다.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가 인근 대학병원 이송에 소요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수용 불가'란 답변에도 막무가내로 왔으니 '인근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얘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것이 최악은 아니라도 당연히 최선은 아니었고 솔직히 차선도 아니다. 물론 그런 환자를 수용했다가 내과에서 데려가지 않는 경우에는 더 복잡한 문제에 휘말릴 수도 있으나 결국 나는 환자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2.
 예상대로 환자는 '요로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밝혀졌다. 다만 기존의 고혈압과 쿠싱 증후군에 덧붙여 현재 급성 심근경색에는 해당하지 않으나 심부전(heart failure)도 새롭게 밝혀졌다. 그래서 무턱대고 수액을 대량으로 투여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고 한 차례 수축기 혈압이 70까지 떨어졌으나 다행히 어렵지 않게 수축기 혈압을 100 이상으로 안정시킬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의학이나 의료와 별달리 관계없는 방법까지 모두 동원해서 환자를 내과로 입원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물론 그런 방법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환자의 상태가 상당히 안정되어 중환자실이 아니라 내과 병동으로 입원을 고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요행히 잘 해결되었다고 앞으로도 계속 운이 따르라는 보장은 없다. 중환자실 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수용 불가'란 답변에도 불구하고 혹은 아예 수용 문의조차 하지 않고 요양 병원에서 이송하는 환자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언젠가는 나의 노력이나 의지와 관계없이 아주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릴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뽀족한 해결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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