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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주 Apr 15. 2024

또 한번 죽을 고비를 넘기다

2013년 새해가 밝은 지 몇일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엄마가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응급실로 실려간 엄마는 여러가지 검사 끝에 급성 신우신염 진단을 받았고, 의사는 곧바로 항생제 투여와 함께 치료를 시작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의사의 진료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엄마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고열에 시달렸고, 염증 수치가 내려가지 않았으며, 섬망 증세를 보였다.

염증이 가라앉지 않고 그에 따라 열이 오르는 것 까지는 이해가 갔다.

하지만 섬망 증상은 너무나도 당혹스러웠다.

엄마는 반은 정신을 잃은 상태로 눈을 치켜뜨고 두 손을 허공을 향해 쉴 틈없이 내저었다.

그 탓에 간병을 하는 사람은 밤에도 잠을 잘 수 없었다.

간병인 한 분은 하루 밤을 버티다 못하시겠다며 받은 돈을 돌려주셨다.


엄마의 섬망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조현병 증세와 연관이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아빠는 엄마의 신경정신과 의사선생님과 한시간 가량 통화를 했다.

문제는 이 증세가 언제 가라앉을지 도대체 호전되기는 할런지 알 수 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엄마는 섬망 증세를 겪는 와중에 이따금 가족을 알아보는 듯도 했으나,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고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횡설수설하는 양상의 사고장애 및 환각과 같은 지각 장애를 동시에 겪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와 나는 엄마와 같은 신경 정신적 질병을 동반한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요양병원을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결과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엄마는 정신을 놓았고, 엄마 몸 속의 세균은 혈관을 통해 혈액으로 퍼져 패혈증으로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의식을 잃은 엄마는 영원한 꿈속으로 들어가 버린 듯 했다.

자가호흡이 약해졌고, 의식 없는 사이에 대상포진까지 걸려 얼굴과 목은 발진 투성이였다

산소호흡기를 꼈고, 이마저도 2주정도만 낄 수 있었으며 그 다음에는 목을 뚫어 산소호흡기를 삽관해야 한다고 의사는 말했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의식이 돌아오더라도 엄마는 평생 목에 산소 호흡기를 뚫고 침대에 누워 지내야만 하는 상황까지 가버리는 것이다.

그 상황이 오는 것을 최대한 미루며, 엄마의 기적적인 쾌유를 바랐지만,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 비정한 최후통첩이 떨어진 그 4월의 어느 날, 여전히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의사선생님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산소 수치를 약간 낮춰보았는데 엄마가 기적처럼 호흡을 하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조금 더 조금 더 산소 수치를 낮췄더니 자가호흡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적이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언제 죽을지 몰라 장례식장을 알아봐야 했던 환자에게, 기적처럼 자가호흡이 돌아온 것이다.

자가호흡이 돌아오자 의식이 돌아왔다.

의식이 돌아오자 더이상 중환자실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일반병실로 올라온 것이 꿈만 같았다.

3개월을 물 한모금조차 마시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던 환자가 미음을 먹기 시작했다. 미음이 곧 죽이 되었고, 밥이 나오기 시작했다.


의사는 기적이라며, 더이상 병원에 계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꽃이 예쁘게 흩날리던 봄, 엄마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 기적의 경험은 마치… 아빠와 엄마, 내가 지난 날 이유 없이 겪어야 했던 불행에 대한 또다른 보상인 것처럼 느껴졌다.

말할 수 없는 역경 속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것에 대한 보이지 않는 손길이 주시는 놀라운 삶의 선물이었다.

집으로 온 엄마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고, 봄날의 꽃들을 만끽하러 나와 산책을 나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자신이 그렇게 오랫동안 누워있었단 사실을 믿지 못했다.

아주 긴 잠을 잔 것만 같았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경험은 엄마의 삶에 또다른 힘이 되었다.

나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는 특별한 사랑을 받는 존재이다.

이런 묵직한 자신감이 엄마의 내면에 강하게 자리잡았다.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서 그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엄마는 더욱 열렬히 신앙에 매달렸고, 기도를 아끼지 않았다.

덤으로 받은 삶이라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감사했다.

그 힘들었던 여정들이 하나도 억울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 자신에게 주어진 이 행복 하나만으로 족하고 감사했다.

엄마가 퇴원하고 수차례 혼자 일어나는 연습을 하고 걸을 수 있게 되었던 어느 날, 엄마는 나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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