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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Apr 23. 2020

휴직이 끝나간다


휴직을 시작하면서 많아진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자주 적는다. 학교든 회사든 늘 어느 집단에 속해서 사회생활을 하던 내가, 혼자 보내는 시간이 상상하지도 못한 만큼 늘어났다. 지금 뭘 하고 사는지, 어느 길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을 때 글을 쓰면 진정이 된다. 흩어진 생각이 모인다. 커피를 내리고 노트북을 켜고 앉아 나에게 묻는다.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건가. 일상이 깨져버린 요즘의 나는 잘 있는 건가.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과연 잘 돌아갈 수 있을까. 한 달의 휴직이 끝나간다. 나는 괜찮은 걸까. 


휴직기간 동안 꽤 많은 일이 있었다. 번역을 해보겠다고 호기롭게 덤볐다가 한계를 느껴 포기하기도 했고, 매일 아침 니체의 글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해보기도 했고, 요리를 배워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보기도 했다. 이것저것 하며 시간을 채워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안감은 막을 길이 없었다. 그런 과정에서 분명하게 배운건 내 감정을 달래는 법은 결국 나에게 있다는 사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내 영역 밖의 일은 아무리 애를 써도 감정 소모만 될 뿐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없다. 내 영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만 나의 노력이 유의미하다. 


휴직 중에 새로운 일상이 생겼다. 매일 아침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 한강으로 나가 산책을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커피를 내리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졸린 눈으로 문 밖을 나가 아침의 햇볕을 쬐는 것과 소음 없이 오전 시간을 보내는 건 바꾸고 싶지 않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침 시간은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참 짧다. 매일 읽고 배우고 싶은 건 한가득인데 내 집중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쉽다. 회사 다닐 때는 하루는 길고 일주일은 짧다고 했는데 휴직 중에는 하루도 짧고 일주일도 짧다. 계획한 것을 끝내지 못하고 잠에 든다.


휴직이 더 길어질지도 모르겠다. 국내외 사정과 회사 분위기를 보아하니 단기간에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연이어 해외 항공사의 파산 소식이 들려오고, 옆 동네에서는 단어조차도 서늘한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다. 항공 업계는 참 좁다. 옆동네의 아픔은 내 지인의 아픔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리 모두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 항공 업계에서 일하는 친구들과의 카톡방은 끊임없이 대화가 올라온다. 쉬라고 해도 일하고 싶은 마음을 보니 어쩔 수 없는 개미인가 보다,라고 자조석인 농담도 한다. 


이 질병이 가져온 그늘이 사라지면 많은 것이 달라져 있겠지. 그때까지 모두가 잘 버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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