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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May 08. 2020

잊어야 하는, 잊혀지는


지나간 사랑은 잊어야 하는 사랑과 잊혀지는 사랑으로 나뉜다. 사랑을 사람으로 바꿔도 무관할 것이다. 나도 모르는 새에 잊힌 사랑은 너무도 많은데 잊어야 한다고 마음먹은 사랑은 단 하나다. 그 기억이 너무 진득하게 남아서 모든 관계는 그 시절에 뿌리를 둔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랑을 굳이 지우려고 애쓰지 않는다. 어리고 밝았던 그 시절에 다시 오지 않을 사랑을 경험했기에 오늘이 있다.


나는 사랑에 대해 늘 생각한다. 여느 노래 가사가 그러하듯, 주된 생각은 지나가고 떠나버린 과거에 대한 사색이다. 삶에서 사랑을 떼어 놓을 수 없다. 가족과 친구에 대한 사랑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지속된다. 그래서 사랑을 이야기할 때는 변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사랑의 깊이는 변해 보아야 안다. 지나고 보면 그 농도가 옅었는지 짙었는지 알게 된다. 


삶을 생각할 때 사랑을 떠올리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나의 20대를 깊게 물들인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얕지만 작은 흔적들을 남기고 떠났던 일상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수백 권의 책도 하나의 깊은 사랑만 못하고 수십 권의 책도 하나의 얕은 사랑만 못하다. 그만큼 감정은 생각을 울린다. 


모든 사람이 인생에 잊히지 않을 사랑 하나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잊히지 않는다고 해서 스스로를 탓할 이유도 없다. 최근에 아는 동생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오래 만난 첫사랑을 잊지 못하겠다고. 그래서 애써서 잊으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누군들 우리 나이쯤 되면 마음속에 못 잊는 사람 하나쯤은 있지 않겠냐고. 그런 사랑을 해봤다는 사실이 감사한 일이지 잊히지 않는다고 고민할 이유는 없다고. 그런 사랑 없는 삶은 오히려 아쉽다. 


지나간 사랑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문제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못 잊는다 한들 문제 될 게 있나. 감정이 깊어지고 생각이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텐데. 순수하게 온 마음을 다 바쳤던 사랑이 잊히지 않더라도 괘념치 않는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고, 더 깊어진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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