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는 여행의 순간이 있다. 사진처럼 남은 순간이다.
태평양 건너 머나먼 미국의, 마이애미 비치다.
스물네 살, 대학교 4학년이 되기 꼬박 한 달 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렸는데, 그때 당차게 혼자 마이애미를 갔다. 말 그대로 혼자. 배낭 하나와 캐리어 하나를 끌고, 누가 봐도 어린 학생의 모습으로 그곳에 갔다.
넓고 넓은 미국에서 왜 마이애미를 선택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범죄 드라마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장소가 마이애미라고 하던데, 나는 그 사실도 알지 못하고 그곳에 갔다. 하루는 우연히 만난 한국인 언니와 한 끼 식사를 하기도 했고 어느 하루는 호스텔에서 만난 칠레, 프랑스 사람들과 해안가에서 피자를 먹기도 했다. 서른이 넘었던 그들이 사랑을 되찾기 위해 마이애미에 다시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의 자유로움에 반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걸 뒤로 할 수 있는 진득한 사랑을 느낀 그들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축복을 받은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한다.
2월이었지만 마이애미의 겨울은 따스했다. 아침저녁은 카디건이 필요할 정도로 쌀쌀했지만 한낮은 신발을 신지 않고 땅을 거닐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그 날은 스타벅스에 갔다. 커피와 베이글을 시키고 큼지막한 크림치즈를 받았다. 여느 때처럼 삶을 찬미하는 일기를 쓰고 마이애미 비치에 갔다.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다.
그리고 그 바다에 누워 세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이어폰을 꼽은 채로. 구름이 지나가면 구름 사진을 찍고, 파도가 치면 바다를 찍었다. 그곳에 혼자 있으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누워있었다. 그 순간에 느꼈던 평화와 행복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각이 난다.
그 순간에 나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내 인생에 이런 자유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나는 그 후로 다른 형태의 수많은 자유를 느꼈다. 그 순간의 자유는 그때에만 존재한다. 그리고 여전히 더 많은 자유가 내 앞에 놓여 있음을 안다. 그게 마이애미 비치는 아닐지라도, 세상에는 수많은 바다가 있고, 수많은 낯선 공간이 있다. 그 날의 자유는 하나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나에게는 또 다른 모습의 자유가 있을 거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2017, 채사장)라는 책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책은 똑같지만 다른 시기의 다른 내가 읽으면 전혀 새로운 책이 된다. 저자는 말한다, 20대 초반에 몽골의 게르에서 누워있던 시간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그리고 그때 본인도 알았다고 한다. 그런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임을.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이 하나일 수는 없다. 모든 순간은 각각의 모습으로 가장 행복하다. 잊히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잊히지 않는 순간은 아니다. 삶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마주하고 싶다. 하늘길이 막힌 지금, 생활하는 환경이 제한적인 지금이지만 다시 더 큰 세상을 보고 싶다. 마이애미의 바다여도 좋고, 한국의 낯선 바다여도 좋다. 집 근처의 작은 골목길이어도 좋다. 생각을 깰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