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다는 말에 강박이 있다. 부지런해야 한다에 대한 강박이 있다.
게으르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요즘 'Think Like a Monk'라는 책을 읽고 있다. 올 초에 읽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한국에 수입되지 않았던 책이다. 우연히 서점 할인코너에서 이 책을 찾았다. 아직 전반부를 읽고 있지만 글을 적어야만 하는 순간이 왔다. 저자는 삶의 Fear(공포,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작정 공포와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말고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선 Fear의 뿌리를 찾아보아야 한다. 내게 꼭 필요한 챕터다. 휴직 기간 동안 수많은 두려움과 강박이 나를 감쌌기 때문이다.
두 달, 2020년 통틀어 5개월째 휴직 중인 내가 가장 심하게 앓고 있는 두려움은 '생산성'에 대한 것이다. 생산하지 않는 삶에 대한 좌절과 우울감이 밀려왔다. 휴식이 딱히 필요하지 않던 나에게 찾아온 비자발적 휴직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내고 가족들에게 괜찮다는 위로의 말을 들어도 홀로 있으면 우울감이 치고 올라왔다.
이 책을 읽고 내 두려움의 근원을, 오늘 아침에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생각해봤다. 내가 가진 게으름, 생산성에 대한 강박은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
어릴 때부터 부지런할 때마다 칭찬받고 늦잠 잘 때마다 꾸지람을 들었다. 가족을 포함한 내 주변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내면 나에게 만족하는 시선, 따스함을 한가득 주었다. 비단 학교 성적뿐만 아니라 생활 태도에도 같은 방식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피아노를 연습하고 책을 읽으면 '역시 ㅇㅇ는 달라, ㅇㅇ는 참 부지런해'라는 칭찬이 따라왔다.
칭찬은 물론 좋은 것이다. 어린 나는 그 칭찬을 먹고 무럭무럭 바른 학생으로 자랐다. 하지만 문제는 게으른 사람, 일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비난과 미움이었다.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비추는, 그 모습을 듣고 보고 자랐다. 그래서 생산성 없는 삶에 대해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학생 시절에는 그 감정의 대상이 게으름이었다가, 경제활동 인구가 된 지금은 노동하지 않는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나는 비자발적 휴직, 비경제 활동 인구가 되었음에 좌절한 것이다.
내 두 달간의 우울감에 대한 답이 나왔다. 이런 삶을 살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정부 지원금을 받는 항공 업계 종사자는 추가적인 경제 활동이 불가능하다. 나는 이 우울감을 떨치고자 봉사활동을 찾아봤다. 그러나 단기 봉사활동은 받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고, 내가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생산(경제) 활동은 두 달 동안 0에 수렴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두 달 동안 가족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오히려 그들이 나를 감정적으로 보살펴 주는 것에 대해 더 큰 감사와 사랑을 느꼈다. COVID-19 시국에도 새로운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기존의 관계들과도 늘어난 여유 시간을 활용해서 추억을 쌓았다. 내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사랑했고, 나에 대해 평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느낀 두려움은 내 마음속의 폭풍이었을 뿐, 나를 보는 타인의 감정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휴직 시작 전에 이 책을 읽었으면 더 좋으련만, 휴직 마지막 주에 이 책을 찾게 된 것이 조금은 아쉽다. 물론 내년도에도 항공업계의 휴직은 지속될 것 같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이 책을 찾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내년에는 휴직이 없기를 바라지만, 있다 해도 올해와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다른 방법으로 나는 생산활동을 할 것이고, 하지 않음에 대한 강박과 두려움도 더 많이 사라질 것이다. 습관적 감정의 뿌리를 알아야만 그 감정을 상대하고 이겨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