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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Jul 07. 2020

모든 공간이 추억이다.


두 번째 휴직이다. 첫 휴직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 기간이기도 했고 코로나 블루도 찾아와서 어영부영 흘려보냈다. 이번 휴직은 그렇게 보내면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휴직 첫 날인 7월 1일부터 학교에 갔다. 졸업생은 5만 원만 내면 6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한 달에 만원도 안 하는 셈이다. 요즘 같이 공공 도서관이 모두 문을 닫은 때에 단비 같은 곳이다. 


졸업한 지 어느새 4년이 넘었다. 대학을 다닌 햇수만큼 시간이 지난 거다. 지하철 역에 내리자마자 낯섦과 편안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낯섦은 대학이라는 공간에 너무 오랜만에 찾아온 어색함이다. 편안함은 내 이십 대 초중반을 보낸 공간에 대한 익숙함이다. 


지하철역부터 학교의 모든 공간에 추억이 깃들어 있다. 분명히 혼자 걷고 있는데 혼자가 아닌 느낌이다. 길을 걷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혼자 웃기도 한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라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뻔했다. 학교의 골목골목, 동기들과 자주 가던 카페, 나무 밑 의자에까지 추억이 있다. 그곳에서 추억을 쌓아가던 나와 친구들이 보인다. 


공간이 바뀐 곳을 보면 추억을 인위적으로 없애버린 듯한 느낌도 든다. 중앙도서관이 그랬다. 학교 다니는 내내 중앙도서관은 우리 과의 사랑방이나 다름없었다. 나무로 되어 있어서 따뜻한 느낌이 가득했고 학교의 오래된 이미지를 품고 있던 공간이었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사람을 편안하게 해서 매일 가도 지겹지 않았다. 


오랜만에 찾아간 중앙도서관은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되어 있었다. 리모델링을 해서 옛 느낌은 지우고 새하얀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차가웠다. 분명 같은 공간에 있는데 내부가 바뀌니 추억이 사라졌다. 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쉬운 마음이었다.



방학인데도 학교에 학생들이 많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한 책상에 한 명만 앉을 수 있게 해 두어서 일반 카페보다는 더 안전해 보였다. 마스크를 꼭 끼고 앉아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정말 예뻐 보였다. 그 사이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며 내가 얼마나 많이 커버렸는가를 생각했다. 대학교 시절 저 자리에 앉아서 공부할 때 나는 얼마나 어렸는지. 그리고 졸업 후에 학교 밖으로 나와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경험들을 많이 했는지. 


10대 때 자아를 적극적으로 형성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대한민국 학생들이 그러하듯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기도 전에 학생이라는 성격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한 건 대학 입학 후였다. 그런 이유로 내 자아는 20대 초반에 많이 만들어졌다. 나를 찾아갔던 공간이 대학교다. 내 자아를 만들어 나간 곳, 그곳을 20대의 끝자락에 다시 가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졸업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시 봐도 아련한 마음이 크지 않다. 너무 오래됐거니와 공부한 기억 외에는 딱히 기억나는 게 없다. 친구들과의 추억도 '공부하다가'가 앞에 붇는다. 야자 하다가 간식 먹은 것, 야자 하기 전에 놀러 나간 것, 즐거운 추억이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안타깝지만, 그게 사실이다. 


반면에 대학교는 공부 외의 모든 것들이 기억난다. 첫 자유를 맛보았고 시간을 적극적으로 채워 나간 덕이다. 모든 공간이 추억이다. 혼자 있는데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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