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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Jul 16. 2020

기억으로부터의 자유

우연히 보석 같은 영화를 봤다. 의도하지 않고 우연히 읽게 된 책이나 영화를 끝내고 나면, 진짜 보물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든다. 영화를 잘 보지 않으니까 이렇게 좋은 영화,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꽉 채워지는 기분이다. 


10대의 유약함이 성인이 된다고 해서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다들 자기만의 고통이 있다. 자기만의 아픈 기억이 있고, 자기만의 드러내지 못하는 세상이 있다. 다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거다. 나 또한 그렇고, 아마 내 주변의 모두가 그럴 것이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나의 가족도 친구들도 그들의 마음속에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아픔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다만, 세상을 살아갈 때, 그 아픔이 주가 되느냐 아니냐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다르다. 좋은 것만 보면서 살아갈 수 있다. 아픔을 외면하는게 아니라, 아픔을 알되 삶의 기쁨만을 보는 것이다. 모든 건 흑과 백처럼 두 개의 면만 있는 게 아니다. 색의 스펙트럼처럼, 색이 밝은 곳도, 농도가 진한 곳도 연한 곳도 있다. 보는 사람의 관점이 세상을 보는 액자가 된다. 그 액자를 좋은 걸로 바꾸면 된다. 



어제 미술사에 관련된 책을 보다가 되게 좋은 말을 발견했다. 캐나다 예술가인 Jeff Wall 이 "심미적 기쁨이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않더라도 자신과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고 말했다고 한다. 원문을 찾고 싶은데, 구글링 해도 찾을 수가 없다. 심미적 기쁨이, 물론 그게 꼭 기쁨이 아니라, 일종의 자극에 불과하더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변화시킨다.  


똑같은 하루는 없다. 모든 순간은 변하고 있고,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똑같은 눈으로 바라보면 똑같겠지, 그런데 이렇게 심미적 자극, 지적 자극과는 다른, 뭔가 감정선에서의 자극이 오면 확실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감성적인걸 좋아하진 않지만, 이성적인 삶이 사는 데에 더 도움이 되고 나에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런 감성을 종종 느끼는 것도 삶을 풍요롭게 한다. 


기회가 된다면 영어 선생님이 아니라, 책으로 아이들을 지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단 한 명이라도, 책을 통해서 삶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면, 내가 그러했듯이 책에서 길을 찾는다면 그 시간은 얼마나 값질까. 아니 값을 따질 수 조차 없겠지. 세상과의 창을 닫고 책으로 들어가는 건 답이 아니지만, 실제 세상과 책 속의 세상을 모두 열어 놓는다면, 삶은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해진다. 그리고 정답은 아닐지언정, 답은 찾을 수 있다.  


모든 것에 집착을 내려놓아야 삶이 보인다. 그게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거 아닐까.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 기억으로부터의 자유. 아픔으로부터의 자유. 과거로부터의 자유. 삶은 앞으로 간다. 뒤로 가는 건 내 머릿속에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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