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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Jul 18. 2020

감정의 안정성


지식의 표정(전병근, 2017)을 읽고 쓰는 글


유발 하라리의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의 심오함에 비해 쉽게 읽힌다고 생각했는데, 그 답을 이 책의 인터뷰에서 찾았다. 17세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해본다고 한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본인이 더 생각해본다고. 타인의 이해의 부족함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것, 이런 삶의 태도는 진짜 배워도 배워도 부족하다.


어렸을 때는 새로운 기술을 보면 신이 났다. 세상이 발전한다는 생각보다는, 내 눈앞에 새로운,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는 게 신기했지. 그런데 요새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보면 무서운 마음이 먼저 든다. 내가 저 기술을 따라갈 수 있을까? 지금은 어리고 빠릿빠릿하니까, 그리고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보았던 세대니까 정보의 습득과 기술의 이해가 빠르다지만, 과연 내가 나이를 먹어서도 이런 속도로 새로운 현실을 마주할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다. 기술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그 기술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은 나에 대한 두려움이다.


유발 하라리도 이런 두려움을 알고 있다. 그래서 다가오는 미래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개인의 회복탄력성과 감성지능이다. 감성지능, 감정적으로 안정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 중의 하나다. 감정이 요동치면 삶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진짜 내재적으로, 아니 본질적으로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나만해도 요즘 혼자 보내는 시간이 엄청 늘었는데, 사람들과 복작복작 살아갈 때와는 다른 불안이 가끔씩 치고 올라온다.


이 불안에 매몰되는 순간 아마 그 감정이 나를 삼켜버릴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였다면 아마 감정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감사하게도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글을 쓰면서 감정의 고요를 찾는 법을 안다. 감정을 객관화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더 많이 나아가야 하지만, 이성의 눈으로 내 감정을 바라볼 수는 있다. 


어릴 때 기억 중에 행복했던 순간이 하나 있다. 가족들과 거실에 누워서 흐르는 구름을 바라봤던 때다.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저학년이었거나 유치원생이었을 것 같은데, 그때 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구름이 흐른다는 걸 처음 보았었다. 하늘은 고정되어있는 건 줄 알았는데 그때 하늘이 흐르고 있다는 걸, 구름이 움직인다는 걸 처음 안거다. 그 기쁨, 그런 기쁨들을 안고 살아간다.


객관적 지식과 세상에 대한 이해, 그걸 버리면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살아있게 만드는 것,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것, 진짜로 내면을 가득 채우는 건 감정이다. 좋은 감정. 인문학이 좋은 이유고, 계속 읽고 싶은 이유다. 내면이 단단한 인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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