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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재소녀 Jul 19. 2020

타인의 의지로 태어난 삶

무의미의 축제(La fête de l'insignifiance) 밀란 쿤데라 (2014)


밀란 쿤데라의 책이 내 고전 읽기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 전에도 서점에서 데미안이나 이방인을 읽으면서, 아 이래서 고전을 읽는 거구나, 하긴 했는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은 후로 고전은 언젠가 꼭 읽어야 하는 걸로 바뀌었다. 


밀란 쿤데라의 책은 어렵다. 절대 쉽게 읽히지 않는다. 읽으면 읽을수록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끝나지 않는 물음표를 남긴다.


이번 책은 서점에서 의도적이지만 우연히 읽게 되었다. 의도적이라는 건, 서점의 유명 작가 코너에 가서 읽을 만한 책이 없나 찾았으니까 의도적인 거고, 우연히라는 건 밀란 쿤데라를 우연히 보게 되었으니 우연히 찾은 책이다. 무의미의 축제가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얇은 책인 줄 몰랐다.


밀란 쿤데라의 책을 읽을 때마다 아쉬운 점이 내가 그쪽 역사를 잘 모른다는 거다. 프라하의 봄이나, 스탈린이나, 대충 어떤 거구나 하는 건 아는데 그게 소설 속에 녹아 있으니까 사실 잘 파악이 안 된다. 스탈린의 농담이 이 소설의 중요 포인트라는 리뷰도 있던데 사실 그 농담을 이해하지 못했다. 역사적인 배경까지 안다면 이 소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 점이 좀 아쉽다. 


밀란 쿤데라의 책을 몇 권 읽다 보니 책들끼리 연결되는 부분이 몇 보인다. 이 책에서는 손동작이 그랬다. 불멸이라는 책이었던 거 같은데, 거기서도 손동작이 나온다. 묘하게 사람을 홀리는 손동작. 이 책에서는 그런 의미로 묘사된 건 아니었지만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손동작이라고 했다. 아마 밀란 쿤데라만이 알고 있는 그 손동작일 것이다.


알랭의 엄마가 알랭에게 해 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진짜로 해준 말은 아니다. 그저 알랭의 귀에 들렸을 뿐.


"네 주위를 둘러보렴. 저기 보이는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자기 의지로 여기 있는 건 아니란다. 물론 지금 내가 한 말은 진리 중에 제일 진부한 진리야. 너무 진부하고 기본적인 거여서 이제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귀 기울이지도 않을 정도지"


우리 중에 아무도 우리 의지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그 누구도 태어나게 해달라고 원하지 않았다. 이 단순하고 명확한 진리를, 이 책에서는 진부하다고 까지 말하는 이 진리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우리는 태어나게 되었다. "내가 세상에 나왔다"가 아니라 나와지게 되었다. 그래서 사는 방법을 배워나가야 하는 것 아닐까. 내 의지로 시작한 삶이 아니니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계속 알아나가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조금 편해졌다. 


그래, 삶이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삶에서 내가 예상하지 못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내가 이 삶을 받았기 때문이다. 열심히 고군분투하면서 살아 나가는 거다. 


밀란 쿤데라, 읽으면 읽을수록 더 알고 싶고 읽고 싶어 지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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